"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13:31~32)
이준익 감독에 의해 2005년에 만들어진 '왕의 남자' 라는 영화는 대종상 시상식에서 10개 부문을 수상한 수작입니다. 연산군과 장녹수로 대표되는 왕궁의 권세와 장생과 공길이라는 광대가 모형하고 있는 광대의 세계를 극명하게 대조를 시켜서 보는 이들에게, 과연 어떤 세계가 진짜 승리의 세계인가를 묻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 속에서 권력의 정상에 앉아있는 연산군의 세계에 장생과 공길이라는 광대의 세계가 침입을 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 왕의 세계가 자유로운 광대의 세계와 만나게 되자 그 왕의 세계의 실체가 하나하나 폭로가 됩니다. 광대들은 마치 신들린 사람들처럼 왕의 세계를 해학으로 풍자하며 왕궁의 실체를 폭로시킵니다.
그렇게 폭로당한 이 세상 권세 자들은 그 자리에서 피 비린내 나는 살육을 저지르며 ‘맞다, 내가 바로 그런 존재다’라고 확인 도장을 찍습니다.
광대의 세계에 의해 폭로당한 왕의 세계는 그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처절하고 측은하며 어둡고 교활한 세계였습니다.
극 중간에 울다 지쳐 잠이든 연산군의 얼굴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왕의 눈물을 닦아주는 광대 공길의 모습이 나오는데, 왕의 세계의 초라한 실체가 광대의 세계에 들키는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광대의 세계는 왕의 세계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눈을 뽑힙니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눈을 잃은 광대들이 이런 대화를 합니다.
‘너는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고 싶으냐? 양반?’ ‘아니’ ‘그럼 왕?’ ‘아니’ ‘그럼 뭐로 태어나고 싶으냐?’ 높은 외줄 위에서 광대들은 소리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광대지’하며 두 광대가 하늘 높이 뛰어 오릅니다.
광대들의 비상입니다. 그 순간 연산군을 몰아내려는 역모 자들의 군사들이 왕궁으로 몰려가는 그림이 이어지고 그것으로 그 영화는 끝이 납니다. 왕의 세계의 몰락입니다. 마치 세상의 마지막을 보는 듯한 그런 그림입니다.
이 세상은 그렇게 두 세계가 대립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쪽 세계는 이 세상의 힘을 추구하며 어떻게 해서든 세상 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는 세계이고 다른 세계는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당하며 그 세상 세력의 실체를 폭로하는 역할을 하면서 그 세상 권세에게 눈을 뽑히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눈을 뽑히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난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살 거야’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만큼 자신들의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는 이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왕의 세계의 실체와 종말을 너무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왕의 세계에 의해 눈을 뽑히는 고난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결국에 가서는 하늘 높은 곳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자유로운 광대의 세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극 중에서 광대들이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니고 그 가운데 줄 하나 쳐 놓고 그 위에서 산다.’ 우리 성도의 삶이 그러한 것이라 공감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땅과 하늘이 오버랩 되어 있는 이상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대와 오는 세대가 겹쳐져 버린 이상한 세대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아직 하늘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땅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에 침노해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점점 땅에서 발을 떼게 되고 결국 하늘 높이 비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두 부류를 명쾌하게 분류해 내는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때부터 항상 인류를 둘로 구분해 내시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한쪽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요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쪽이 항상 은혜에서 제외된 자들에게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양쪽 진영의 싸움에서 가해자로 분류가 되는 자들이 항상 심판을 받습니다.
가장 먼저 가인이라는 힘의 세계와 아벨이라는 은혜의 세계를 나누십니다. 힘의 세계는 자신이 자기 인생의 왕이 되어 세상의 힘을 추구하며 그 힘을 쌓아 자신을 자랑하는 세계이고 은혜의 세계는 자신을 부인당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는 자기 부인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힘의 세계에 의해 은혜의 세계가 폭행을 당해 죽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의 세계의 특징과 은혜의 세계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왕의 세계, 즉 힘의 세계는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자신의 행위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업신여김을 당할 때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잔인해집니다. 왜냐하면 힘의 세계 속에서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제사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 즉 자신의 선한 행위를 인정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 하나님보다 힘이 약합니다. 그래서 그 분노를 발산할 다른 대상을 찾습니다. 그런데 마침 자신의 제사를 초라하게 만드는 약자가 곁에서 발견됩니다. 동생 아벨입니다.
가인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아벨에 의해 가인이 악인으로 폭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광대들에 의해 왕가의 비리가 드러나는 것처럼.
가인은 힘을 추구하고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며 뭇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는 삶이 옳은 삶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고 하나님께도 멋진 제사를 정성스럽게 올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고 동생인 아벨의 제사만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자 그의 열심과 정성의 실체가 살인이라는 극악한 모습으로 폭로가 됩니다. 가인의 모든 열심은 결국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아벨은 그렇게 가인의 정체를 폭로하고 죽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천국의 1호 시민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