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내면 아이

by HappyPeople IN JESUS 2024. 8. 23.

내면 아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한때 우리 자신이었던 아이는 일생 동안 우리 내면에서 살고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릴케는 "모든 사람 안에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가 숨어 있다."고 썼습니다.

 

프랑스 여성 마르타는 일곱 살에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직장을 다녀야 했고, 외할머니가 와서 마르타를 돌봤습니다.

 

누구도, 단 한번도,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철저한 금기 사항이었으며, 어린 마르타는 아버지가 왜 사라졌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단지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불행한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아버지가 다른 여성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였습니다.

 

마르타는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시아 문학을 전공해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부족함이 없이 살아갔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일주일 동안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온 마르타는 남편에게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누구도 그녀의 돌연한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었으며,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남편은 떠나야 했고, 자신의 외할머니가 그랬듯이 마르타의 어머니가 와서 아이들을 돌봤으며, 두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대물림되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돌연 자신을 떠남으로써 자기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강박감 때문에 그녀 내면의 놀란 아이가 먼저 결별을 선언했다는 사실을.

 

과거에 일어난 두려움과 앞으로 또 그러하리라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내면 아이가 치유되지 못한 상실과 무력감 속에 자기방어를 한 것입니다.

 

누구나 내면에 상처 입은 아이가 있습니다. 아무도 안아 주지 않고 외롭게 내버려 둔 아이가. 그 아이로 인해 인간 관계가 힘들어지고, 감정이 폭발하고, 삶이 헝클어집니다. 브래드쇼는 이 내면 아이가 사람들이 겪는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옛날 먼 나라에 한 어린 왕자가 살았습니다. 왕자는 몸이 약해 늘 고통받았습니다. 병약한 왕자에게 지친 왕이 왕자를 성의 외딴방에 가두고 '너의 마음에 기쁨이 찾아올 때까지'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왕자는 불행과 고통밖에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딴방에서 언제까지나 혼자 지내야 했습니다.

 

왕자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왕자를 치료해 외딴방에서 나오게 돕는 것은 왕의 책임이었습니다. 이 왕자가 바로 우리 안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이며, 왕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 아이가 그곳에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받지 못하는 외로운 고아라고 느끼는 아이가. 실제로는 더 잘살고 싶고, 인생을 더 소중히 만들고 싶어 하는 아이가. 그 내면 아이를 다시 삶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는 여리고 아픈 아이가 한 명씩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에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아픈 경험이 만져질 때마다 그 감정과 기억들을 무의식 깊은 곳으로 밀어 넣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 아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른 척한다고 내면 아이가 그곳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나 그곳에 있으면서 우리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아이는 속삭입니다. '나 여기에 있어. 나를 피하지 말아줘.' 우리는 그 아이를 내면 깊숙이 밀어 넣고 최대한 멀리 떨어짐으로써 고통을 끝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픔의 시간을 길어지게 할 뿐입니다. 아이를 찾으러 먼 과거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안을 깊이 들여다보기만 하면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아이의 고통이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의 잠긴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칩니다. "어서 일어나!" 

 

아들이 문도 열지 않고 말합니다. "일어나기 싫어요, 아빠."

 

아버지가 다시 소리칩니다. "얼른 일어나! 학교 가야지."

 

"가고 싶지 않아요."

 

"왜 가고 싶지 않다는 거니?"

 

아들은 말합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첫째, 학교가 너무 재미없어요. 둘째, 아이들이 나를 괴롭혀요. 셋째, 학교가 너무 싫어요."

 

아버지가 말합니다. "네가 학교를 가야만 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해 주지. 첫째, 학교에 가는 것이 너의 의무이기 때문이야. 둘째, 아이들이 너를 괴롭힌 건 오랜전 일이야. 넌 지금 쉰두살이야. 그리고 셋째, 넌 학교 교장이야. 어서 일어나! 장난감 그만 갖고 놀고."

 

쉰두 살이 되어도, 학교 교장이 되어도,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그곳에 있습니다. 

 

상처받은 아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그 아이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어쩌면 아이가 슬퍼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느껴지면 호흡을 하면서 '네 안에 슬픔이 있는 것을 알아. 그동안은 내가 바쁘게만 살아왔어. 하지만 이제는 내가 너를 안아 줄께.' 하고 말합니다.

 

감정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잘 보살피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아이를 알아보고 부드럽게 안아 주는 것은 아픔을 덜어 줍니다. 다루기 힘든 감정은 여전히 남겠지만, 아픔은 훨씬 가벼워질 것입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147:3)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