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노아의 방주

by HappyPeople IN JESUS 2024. 4. 3.

노아의 방주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창세기 6장 1~10절)

 

노아의 홍수 사건에 등장하는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홍수 사건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복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어떻게 이 노아의 홍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라는 동일한 주제로 선지서와 시가서 그리고 신약의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지게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짐승들입니다. 그리고 홍수로 창일한 바다와 커다란 나무 방주가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물, 바다, 홍수는 죄악 된 세상과 그 죄악 된 세상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심판 혹은 저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홍수에 빠지면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온 땅에 창일한 홍수는 바로 인간의 죄악과 그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저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저주의 물 위로 방주가 떠있고 그 방주 안에 들어 있는 자들은 그 방주로 인해 생명을 얻게 됩니다. 본문에서 방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테바’는 사실 배가 아닙니다.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5m, 폭 22m, 높이 13m의 직육면체 상자입니다. 구약에는 그 ‘테바’ ‘방주’라는 단어가 또 다른 곳에 한군데 더 나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태어났을 당시는 애굽 왕 바로가 히브리 사람들의 번성을 막기 위해 히브리 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낳고 석 달을 숨겨서 키우다가 모세를 역청 칠한 갈대 상자에 넣어 물위에 떠다니게 만들었습니다. 그 모세가 탔던 갈대 상자가 바로 ‘테바’ ‘방주’입니다.

 

노아의 방주도 역청을 칠했던 것처럼 모세의 방주도 역청을 칠합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노아처럼 ‘테바’ ‘방주’를 타고 죽음의 물에서 건져진 자입니다. 

 

모세는 노아와 그의 식구들처럼 히브리 사내아이들과 다 함께 저주의 물에 빠져 죽어야 할 자였습니다. 애굽에서 모두 죽어야 하는 히브리 사내아이들의 운명은 바로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는 죄인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것입니다. 그 속에서 모세라는 아이가 방주에 의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 상자는 모두 다 죽어야 할 자들 중에서 어떤 선택된 소수의 무리를 방주가 품어 안고 살려내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을 품에 안아서 그들의 생명을 건져낸 방주가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홍해 사건입니다. 홍해 바다는 하나님 앞에 범죄 한 모든 죄인이 빠져 죽어야 하는 저주와 심판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그 홍해 바다에 세상의 죄인들을 상징하는 애굽 군대가 모두 빠져 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바다에 빠져 죽지 않고 그 바다를 마른땅처럼 걸어서 건넌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입니다. 성경은 그 사건을 가리켜 이스라엘이 구름과 바다에서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과 모세의 구출 사건에서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을 품어 저주의 물로부터 구원해 낸 것이 ‘테바’ ‘방주’였습니다. 그런데 홍해 사건에서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품에 안고 그들을 구원해 낸 것이 방주가 아니라 ‘모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모세의 품에 안겨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주와 모세는 어떤 한 가지를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는 것인데 성경은 그 모세가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주 너희의 하나님은 너희의 동족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18:15)

 

모세가 이야기하고 있는 자기와 같은 선지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홍해 바다에서 이스라엘을 품에 안고 그들을 구출해 낸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친절하게 모세가 홍해 바다에서 행한 그 일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날 것인지를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을 통해 한 번 더 설명해 줍니다.

 

복음서를 보면 죄인들이 모두 빠져 죽어야 하는 저주의 물에 빠지지 않고, 마치 방주처럼 그 물위를 걸어 풍랑에 빠져 죽어야 할 제자들을 건져내시는 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막6:45~52)

 

어떻게 노아의 방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모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지가 여기에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은 마태, 마가, 요한복음 공히 오병이어의 기적 뒤에 붙어 있습니다. 그 뜻은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은 오병이어의 사건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일어난 곳은 디베랴 바다 건너편 광야입니다.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 바다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곳은 디베랴 바다 동쪽입니다.

 

먹을 것이 전혀 없는 광야에서 모든 사람이 먹고 남을 만큼의 음식이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모세에게 불평을 하던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만나 사건이 떠오를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그대로 두면 모두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어떤 식량도 찾을 수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의 만나가 하늘로부터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서에서는 음식을 마련할 수 없는 광야 빈 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굶고 있던 자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 두 사건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떡이 주어져 그 떡을 먹은 자들이 살아나게 될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