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장 37~39절)
노아는 비도 오지 않는 산꼭대기에서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120년 동안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비 한 방울 오지 않는데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만일 눈에 보이는 세상 부귀영화와 체면과 자랑을 챙기는 자였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그를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롱을 참으며 그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때 방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홍수를 대비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세상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이제는 물이 아니라 불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불바다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아처럼 세상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우리의 인생 동안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를 그 저주의 불바다 위로 끌어올려 방주처럼 물 위에 뜨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므로 그냥 무작정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 구원의 방주는 물 위에 뜨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빠져 죽어야 할 홍수 속에 우리 주님께서 대신 빠져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 불바다 위를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12:50)
주님께서 당신이 지실 십자가를 가리켜 ‘받을 세례’라고 표현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빠져 죽어야 할 저주의 물, 홍수 속으로 푹 빠져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홍수 속에서 죽으셨습니다. 바로 저주의 물에 떠 있는 방주의 모습입니다.
방주는 저주의 물 위에 떠 있고 그 안에 들어있는 노아의 여덟 식구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물 위를 걸어, 가려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이야기가 요나서에 명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는 표적인 주님께서 행하신 모든 표적을 가리켜 요나의 표적이라 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이 뭡니까?
요나가 타고 가던 배가 폭풍을 만나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을 판입니다. 그때 요나는 자신을 바다로 던지라고 합니다. 선원들이 요나를 바다로 던지자, 바다가 이내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를 상징하는 요나가 물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요나가 물속에 빠짐으로 선원들이 살아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물속에 빠져 다른 이들을 구해낸 요나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 밤을 죽어 있다가 살아납니다.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빠져 죽어야 할 홍수 속에 빠져 죽은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 저주의 홍수 속에 빠져 죽음으로 우리는 물 위에 떠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게 바로 노아의 홍수 사건이 담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홍수와 풍랑을 피해 죽음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의 길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여전히 풍랑이 일고 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그 바다 위를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환경은 몰아치는 홍수 같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하고 말씀하셨기에 그리고 약속의 땅에 반드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신다고 약속하셨기에 ‘그 까짓 거’하면서 믿음으로 물 위를 걷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이러한 풍랑들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이 모든 풍랑이 가시적으로도 다 사라지고 우리는 영원한 행복과 안식과 기쁨만 있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이제 저주의 바다, 심판의 홍수가 없습니다. 그게 예수 믿는 우리의 실존입니다. 그 땅을 바라보며 이 땅의 풍랑을 잘 이겨내십시오. 그게 믿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생의 자랑이나 육신의 정욕만을 채우려 혈안이 된 자들은 베드로처럼 풍랑 속으로, 바다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들이 빠지게 될 바다는 여느 바다가 아닙니다.
그곳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저주의 바다, 심판의 바다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요,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면 이 세상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풍랑이 이는 바다 같은 이 땅에서, 홍수가 무섭게 창궐하는 이 땅에서 잔잔하게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만을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삶 속에 그렇게 고통스러운 홍수와 풍랑이 일고 있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자랑스러운 자들이 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보면 정작 붙들어야 할 예수를 놓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인 ‘하나님의 자녀로의 성숙’을 우리의 목표로 삼으십시오. 이게 노아의 홍수가 담고 있는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