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멸망 속에 꽃피는 은혜

by HappyPeople IN JESUS 2024. 4. 15.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지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너희 주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에 언제 올지 집주인이 안다면, 그는 깨어 있어서, 도둑이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마 24:37~43)

 

이 모습은 최후의 심판 때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노아의 때도 똑같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로 데려감을 당하는 이들과 음부에 버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십니다.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은 똑같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 나라를 준비했던 사람이고 버려둠을 당한 사람은 일상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이 땅의 힘을 좇아 살던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무슨 명령을 들었어야 순종도 하고 불순종도 할 것 아닙니까그렇다면 하나님은 노아의 시대에도 복음을 전하셨나요? 분명 하나님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는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감으로써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벧전3:19~20)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후에 지옥으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력으로부터 차단이 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우리 주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또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열심에도 구원 얻은 자들이 겨우 여덟 명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 태어났던 우리 조상은 복음도 못 들어보고 지옥에 간 것인가?’라는 우문을 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창세 이후로 계속해서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자연을 통해, 우리 인간들 속에 남아 있는 구조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양심을 통해 인간의 죄악상과 하나님 은혜의 필연성을 계속해서 외치셨고 지금도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롬 1:18~20)

 

우리가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분명 심판의 유예기간을 주셨고 그 유예기간 동안에 그들이 저주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복음을 전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120년간의 유예기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그렇게 모두가 하나님을 등지고 그분의 말씀을 우습게 여길 때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심판의 날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요? 노아는 날 때부터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었습니까그것은 오직 은혜에 의해서입니다.

 

그 확실한 답이 창세기 68절에 나와 있습니다“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가 뭔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심판의 날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노아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 저주의 심판 속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으면 그 저주의 물속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었던 똑같은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자 그가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자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69절을 보면,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8절에서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진술을 하고 바로 노아는 그 은혜에 의해 의인이 되었다고 9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게 되는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게 된다는 것을 창세기 기자인 모세는 여기서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처럼 영원한 죽음과는 아무 상관없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을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동일한 어구를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녹과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던 자들이고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모세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멸망 속에 꽃피는 은혜의 이야기를 가리켜 우리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