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리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은 천재다. 그러나 군중은 머리 없는 괴수, 거대하고 야수 같은 바보가 되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냉정하지만 정직한 통찰입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생각하고, 무리 속에 있을 때 휩쓸립니다. 유행을 따라가고, 남들이 하는 취미를 따라 하고, 남들이 사는 것을 사고, 남들이 가는 길을 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로 살기보다 '우리 중 하나'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집니다.
이 통찰은 성경이 아주 오래전부터 말해온 진리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다만 성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문제는 단지 "내가 특별해지지 못했다"가 아니라, "내가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입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보십시오. 갈멜산에는 바알 선지자 450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부르짖고, 한 몸처럼 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며, 군중의 광기 속에서 서로를 부추겼습니다. 그 압도적인 숫자 앞에 홀로 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채플린이 말한 그 "천재적인 개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엘리야 자신도 그 직후 로뎀나무 아래서 "나만 홀로 남았다"며 무너져 내렸습니다(왕상 19:10). 그가 무리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자기 안의 탁월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칠천 명을 남기리라"(왕상 19:18). 엘리야조차 몰랐던, 세상 어디엔가 숨겨져 있던 칠천 명. 그들 역시 스스로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그들을 따로 세우셨을 뿐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세우고 나팔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모든 백성이 엎드려 절하던 그 순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단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만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채플린의 표현 그대로였습니다. 왕의 위엄, 나팔 소리, 무릎 꿇는 군중의 파도, 그 모든 압력 앞에서 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단 3:16).
이들의 담대함은 자존감이나 개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겠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단 3:17~18)라고 말했습니다. 결과를 확신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무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몇 해 전, 어느 교회의 한 청년 성도가 회사에서 겪은 일입니다. 그의 팀 전체가 관행처럼 해오던, 도덕적으로 석연치 않은 매출 처리 방식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지적하면 "융통성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조용히 팀장에게 자신은 그 방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한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무서웠어요. 근데 계속 기도하는데, 이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였어요."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개인'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정직한 나"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너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채플린이 말한 "군중이 되지 말라"는 통찰과 바울의 이 말씀은 겉보기에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의 자기계발서는 말합니다. "너 자신을 발견하라. 네 안의 잠재력을 믿으라. 상위 1%가 되라." 이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새로운 우상으로 세우는 일입니다. 무리에서 벗어나되, 결국 더 큰 자아로 향하는 길입니다. 반면 바울은 말합니다. 세상을 본받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즉 참된 개인의 길은 '나를 향한 발견'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요약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당신이 특별한 이유는 당신 스스로 발견한 잠재력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위해 친히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군중의 일원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스스로 빛나는 천재로 자처하도록 부름받은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신 자리를 걸어가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내가 남들보다 특별한 건 무엇인가?" 좋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깊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선한 일은 무엇인가?" "나는 세상의 나팔 소리에 무릎 꿇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결과가 어찌 되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 있는가?"
갈멜산의 엘리야도, 풀무불 앞의 세 청년도, 그리고 조용히 팀장 앞에 섰던 그 청년 성도도 대단한 인간이어서 무리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 알았기에, 그 확신 하나로 물결을 거슬러 설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상위 1%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지으신 그 한 사람으로 서면 됩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