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살던 인디언들 가운데 아파치라는 유명한 부족이 있었습니다. 미국 남서부 지방에 주로 살던 인디언들로서 대단히 강한 부족이었습니다. 그들과 백인들 사이에 있었던 아파치 전쟁은 미국의 서부 개척사에 있어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부족에게는 하나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절대로 추장직은 세습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그 부족 가운데 가장 강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언제나 추장으로 추대를 받았습니다.
한 번은 어느 추장이 나이가 많아서 은퇴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를 뒤이어서 추장직에 오르고 싶어 하는 여러 사람들이 후보자로 나섰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추장으로 세우기 위해 여러 가지 시합이 벌어졌습니다. 말타기, 창던지기, 활쏘기 시합도 있었습니다. 이제 많은 후보자 가운데 세 명으로 추려지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기 위해서 마지막 시합이 벌어졌습니다. 추장은 세 사람에게 멀리 바라보이는 산꼭대기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는 저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내려와라. 그리고 내려올 때는 너희가 정상까지 올라갔다는 증표를 하나씩 가져오도록 해라.’ 대단히 가파르고 험한 산이었습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추장이 되겠다는 일념하에 죽을 각오를 하고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습니다.
이제 부족 앞에서 자기들이 가지고 온 증표를 보일 차례가 되었습니다. 첫째 사람은 산꼭대기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풀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그것을 추장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갔더니 이런 특별한 풀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둘째 사람의 손에는 돌멩이 하나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는 이렇게 매끈매끈한 돌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사람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추장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 물었습니다. ‘아니, 너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증표를 하나 가져오라는 내 말을 듣지 못했느냐?’ 셋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분명히 그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우리 마을의 반대 방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멀리 아주 크고도 아름다운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주변의 땅은 너무나도 비옥했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부족의 거주지는 즉시 그곳으로 옮겨야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산꼭대기에 올라간 증표로서 그 비옥한 땅을 제 마음에 품고 돌아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던 추장은 그 즉시 모든 사람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나 다음의 추장은 바로 너다.’ 왜 그랬겠습니까?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 마음에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부족의 추장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파치 부족의 전통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교훈을 던져줍니다. 세습이 아닌 능력과 자질로 추장을 세우는 공동체의 결정 방식은, 단순히 힘이나 기술이 아닌 비전, 곧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산꼭대기까지 오르는 마지막 시험은 단순히 체력이나 용기의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든 산을 오를 수 있었고, 누군가는 풀이란 증표를, 또 다른 이는 돌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은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에게는 증표보다 더 값진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전이었습니다.
그는 산꼭대기에서 마을의 반대편을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강과 비옥한 땅을 보았습니다. 그는 단지 본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곳으로 우리 부족이 나아가야 한다는 미래를 마음에 품고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리더의 자질이었고, 그가 추장으로 지명된 이유였습니다. 과거의 흔적이나 현재의 증거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믿음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골로새서 3장 1~3절 말씀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사람은 이 땅의 것을 붙들지 않습니다. 땅에서 나는 풀, 돌 같은 증표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라는 더 크고 본질적인 현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며,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마음에 품고 현실 속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의 사람은 산을 오릅니다. 하지만 증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보기 위해 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길을 봅니다.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은혜의 땅, 그분의 뜻과 비전을 발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증표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더 많은 소유, 업적, 명성 같은 것들이 증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위의 것을 보았느냐? 너는 내 나라를 향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느냐?”
믿음의 길은 험한 산길과도 같습니다. 땀 흘리며, 때론 넘어지며, 외롭게 올라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삶이 머무를 곳은 지금 이 땅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감추어진 비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여, 이제 위의 것을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약속의 땅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세상의 인정이나 증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당신의 손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입니다.
추장은 돌멩이나 풀을 가진 자가 아닌, 소망을 품은 자를 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오늘 당신을 그렇게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말입니다. 오늘, 다시 위를 보십시오. 위의 것을 품고, 믿음으로 걸어가십시오. 그 길 끝에는, 우리가 바라는 그 땅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