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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무 앞에서 성도의 죽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13.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6~17)

우리는 율법과 은혜 사이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긴장 속에서 인간의 실존은 드러나고, 하나님의 진의는 더 선명해집니다. 선악과와 생명나무, 이 두 나무는 단지 에덴동산에 놓인 과일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향한 하나님의 두 방식인 금지와 허용, 율법과 은혜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명령은 인간으로 하여금 존재의 한계를 인식하게 하십니다. 명령이 있다는 것은 곧 명령하신 분이 존재한다는 뜻이고, 명령을 받은 나는 ‘그분이 아닌 존재’로 구별됩니다. 여기서 인간은 존재적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내 존재를 따로 챙기고 싶어질 때, 그 욕망은 반드시 ‘위반’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체성을 확보하고 싶어질 때, 우리는 죄를 짓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적 위기입니다. 죄는 단지 도덕적 실패가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나는 나입니다!”라고 하나님 앞에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은 왜 그렇게 매혹적으로 보이는 나무를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두셨을까요? 왜 굳이 인간이 따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도록 배치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생명나무의 열매를 향한 갈망은, 죽음을 통해서만 참으로 소중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한 존재로 살려고 몸부림칠 때, 우리는 매일 선악과를 따먹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죽어갑니다.

이 죽음은 단순한 육체의 종말이 아닙니다. 존재의 붕괴요, 은혜로부터의 단절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나?’라는 한숨,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만족할 수 없다’는 절망, 그것이 바로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의 실현입니다. 내가 하나님 없이 나를 챙기려는 순간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선고를 다시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죽음에 멈추지 않습니다. 그분은 생명나무를 여전히 거기에 두십니다. 그것은 율법을 뚫고 나와서 행위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허용된 것,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믿음으로 덥석 먹으면 됩니다. 자기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생명나무의 열매가 입에 덥석 들어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선악과와 생명나무 사이에 서 있습니다. 매일 매일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내 존재를 따로 챙기려 할 때, 나는 정녕 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를 내려놓을 때, 나는 정녕 삽니다. 이것이 성도의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자기를 부인함으로써만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죽음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따로 ‘’를 세우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생명나무,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그분이 은혜로 허용하신 열매를, 믿음으로 받아 먹으십시오. 죽음을 넘어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나게 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요한계시록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