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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벨탑 사건

by HappyPeople IN JESUS 2024. 5.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장 1~9절)

 

성경의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자부심과 야망으로 가득 차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해 거대한 탑을 쌓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땅에 흩으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오만함을 하나님께서 견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러한 행위와 행위의 산물을 가리켜 ‘바벨’이라 부릅니다. 그러한 인간들의 행위는 한 마디로 인간이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대항하여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사건은 창세기 서론의 첫 번째 사건인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붙잡았던 원초적 실수의 내용과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도 한 마디로 줄이면 ‘바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바벨탑 사건은 하나의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 등장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들의 모든 패역과 범죄로 바벨의 정신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의 결론 부분인 요한 계시록에서 악의 총체를 가리켜 바벨론이라는 상징적인 언어로 표기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첫 번째 바벨의 사건인 아담의 선악과 사건은 곧 가인의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질서와 창조 목적을 떠난 가인은 두려움에 맞서는 요새이자 자기 보존을 위한 에녹이라는 성을 건설하는 것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됨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자신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자를 사정없이 음해하는 포악한 힘의 원리로 이 세상을 살게 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쫓겨난 이후에 가장 처음 한 일이 에녹성을 쌓은 것 역시 저주받을 바벨의 정신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자들은 불안과 몰락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으로 누군가에 의해 피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동반하는 것임이 여실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갈등과 다툼과 분열은 모두 일종의 영웅주의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영웅주의와 거대주의, 거인처럼 우뚝 서려는 열망은 필연적으로 타인과 서로 전쟁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영웅주의는 라멕으로 이어져 소년을 죽이고도 자신의 포악함을 자랑하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역시 바벨의 정신입니다.

 

그 라멕의 후손들이 네피림으로, 거인으로, 용사로, 땅에 유명한 자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인으로 영웅으로 서려는 시도, 역시 바벨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를 통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그렇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떠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영웅이 되어 사는 자들은 모두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십니다.

 

그럼에도 창세기 10장의 노아의 족보를 보면 그 노아의 후손에서 니므롯이라는 영걸이 나옵니다. 그리고 레센이라는 큰 성을 쌓고 거대한 나라들을 세운 그 영걸 니므롯에서 본문의 바벨탑으로 이어지며 창세기의 서론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저주 받을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로 그 바벨론으로부터 가나안으로 인도되는 장면이 12장의 아브람의 등장으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가 바로 바벨론입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에서 이스라엘이 시작되고 그 이스라엘은 신약의 교회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영걸이라는 히브리어는 시편 52편 1절의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에서 강포한 자라고 번역이 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영걸 니므롯은 크고 강하며 용맹스러우나 강포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가 힘이 세고 뛰어난 영웅이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대항하고 사람들을 압제하는 폭군이요, 전제 군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근거가 창세기 10장 9절에 나옵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세기10:8~9)

 

9절을 보면 니므롯이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었다고 나옵니다. 거기서 ‘앞에’라는 말은 원래 ‘위에, 넘어서, 대항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번역하면 ‘니므롯은 여호와 하나님을 뛰어넘으려 여호와와 대항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가 사냥꾼이었다는 말은 당시 고대인들의 왕의 역할에 대한 사고가 반영된 말입니다.

 

당시 고대 시대에는 이미 들짐승들이 사람과 가축을 위협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의 왕은 제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온갖 사나운 야생 동물들을 멸절시키는 것을 최고 우선 과제로 삼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왕을 사냥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영걸 니므롯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항하고 사람들을 압제하여 스스로 영웅의 자리에 앉아 있는 세상의 왕, 타락한 자의 대표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가 세운 나라들이 어떤 나라들인지 보면 그 점은 더 명확해집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창10:10~12)

 

바벨론과 앗수르를 처음 세운 왕이 니므롯입니다. 이 니므롯이라는 인물이 여기 말고 성경에 단 한 번 나오는데 거기서는 앗수르를 니므롯의 땅이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미가5:6)

 

이렇게 그 세상의 왕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니므롯에 의해 앗수르와 바벨론이 생겨났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의 역할을 충실히 하다가 사라진 나라들입니다.

 

그건 역사 속에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합니다. 그렇게 앗수르와 바벨론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의 반대편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막강한 세상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한 계시록에서도 세상의 마귀 세력을 바벨론이라 지칭하신 것입니다.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계18:21)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 바벨론에서 나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뚝 솟은 야망을 위해 상승하려고 노력할 때 종종 기반을 다지는 은혜를 잊어버리는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