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사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식구들이 여기에 더 있습니까? 사위들이나, 아들들이나, 딸들이나, 딸린 가족들이 이 성안에 더 있습니까? 그들을 다 성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십시오. 우리는 지금 이곳을 멸하려고 합니다. 이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규탄하는 크나큰 울부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렀으므로, 주님께서 소돔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롯이 나가서, 자기 딸들과 약혼한 사윗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롯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서두르게. 이 성을 빠져나가야 하네. 주님께서 이 성을 곧 멸하실 걸세.’ 그러나 그의 사윗감들은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창세기 19:12~24)
본문 19장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은 자기 자신들만을 사랑하느라 절대로 나그네를 대접하는 삶을 살 수없는 죄인들의 특징과 그들의 말로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들어가는 땅에서 그들과 섞이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너희가 섬기면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될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경고를 합니다. 주님께서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의 멸망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견주어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를 통하여 이제 다시는 세상을 물로서 심판 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셨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통해 이제는 물 정도가 아닌 완전히 끝장나는 불의 심판이 도래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후서 3장에서 베드로는 말세에 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고 여전히 정욕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며 농담처럼 여길 것이라 합니다.
물, 불, 기롱, 심판 등 창세기의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똑같이 나옵니다. 창세기의 물과 불의 심판의 이야기를 한 문단으로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의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여전히 소돔 성의 정욕을 좇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여기던 사위들은 모두 소돔과 함께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리고 롯의 아내 또한 소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겨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여기고 지체하던 롯은 살아났습니다.
어떻게 해서 살아나게 되었습니까? 롯은 하나님의 인자, 즉 사랑하심에 의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인자는 중보자의 희생과 기도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렇게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함께 멸망당해야 했던 롯이 아브라함이라는 중보자의 기도로 하나님의 인자를 입어 살아난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역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죄인들과 함께 뒹굴고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하나님의 인자를 입어 건져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이 경고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기롱하는 자들처럼 농담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그의 서신 서에서 그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그 사실이 농담처럼 여겨지지 않고 정말 믿어지는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녹아버릴 터인데,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벧후 3:11~14)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에서 나타나기를 힘쓰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이제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이 헌 하늘과 헌 땅이 물러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라는 성경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멸망할 바벨론에서 나와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는 성경의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은 여전히 자신들의 힘과 지혜를 이용하여 견고한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쌓고 있는 바벨탑과 너희가 두르고 있는 바벨성은 소돔과 고모라가 되어 유황불에 살라질 것이니 어서어서 거기서 나오라(계18:4)’고 외치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러한 하나님의 외침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를 믿노라 자처하는 이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농담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왕왕 있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너져 버릴 도성에서 빨리 빠져 나오라는 하나님의 외침을 들었을 때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애씀의 모습이 당연히 나타나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땅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자기의 생명 또한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세상의 정욕을 좇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조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게 어찌 성도의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현 세대와 오는 세대가 겹쳐 있는 아주 신비한 시기입니다. 오는 세대가 현세대 안에 뚫고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현세대에 들어와 있는 오는 세대를 분별하여 인식할 수 있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보이지 않는 오는 세대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선물로 받은 성도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현 세대에서 오는 세대를 인식하여 살며 이 썩어질 현 세대가 완전히 심판의 불에 의해 물러가고 오는 세대만이 오롯이 드러나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의 눈을 뜨게 되어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생각하는 다른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정말 소망을 가진 이들은 이 땅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의해 완전히 멸해 질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땅의 힘을 쌓는 허황된 삶에서 돌이켜 자신을 깨끗이 하는 삶에 전력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