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26~31,38)
이 제단화는 이탈리아 휘에솔의 산 도메니코 성당에 걸려 있었는데, 1611년 스페인에 팔려서 지금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대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을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것입니다. 이 주제의 그림들을 보통 '수태고지' 또는 '성모영보'라고 합니다.
수태고지는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장면입니다. 그 중에서도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수태고지들이 가장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의 뛰어난 회화적 예술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의 인격과 신앙에서 이런 걸작들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천사와 마리아 모두 경건하고 겸손하게 서로에게 몸을 굽혀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둘 다 후광을 가졌으나 천사는 하늘의 빛을 몸에서 뿜고 있습니다. 날개를 접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제 막 하늘에서 내려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무릎에 책이 놓여 있는데, 천사가 나타났을 때 마리아는 성경을 읽고 있었으며, 마침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일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아치의 줄에 제비가 앉은 것은 복음이 시작된다는 뜻이고, 해로부터 들어오는 빛살에 비춰 그려진 비둘기는 성령을 뜻합니다.
수태고지라는 그림에는 종종 이렇게 두 인물 사이에 기둥이 나타나는데, 이 기둥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유대백성을 구해내실 때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상징하며, 또한 예수님의 곧고 바른 삶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둥 위의 부조에는 이사야의 얼굴이 보입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를 상기 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림을 좀 더 살펴보면 왼쪽 끝에 정원 풍경이 보이는데, 화가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천사에 의해 쫓겨나는 광경을 그렸습니다.
왜 수태고지에 아담과 하와가 나타난 것일까요? 프라 안젤리코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는 이유가 우리의 원죄 즉,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프라 안젤리코 (1387~1455)
프라 안젤리코는 본명이 '지오바니 다 휘에솔'이었으나 도미니코 수도사가 되면서 '기도 디 피에트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수도원에 있으면서 늘 청빈하고 겸손하며 신심이 깊어 축복 받은 천사로 불릴 만큼 주위의 존경을 받았고, 훗날 복자에까지 올랐다. 천주교에서 복자란 성자 바로 다음의 지위이다. 그가 어디서 그림을 배웠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미사용 책의 삽화를 그리다가 제단화를 그리는 화가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는 원근법과 색, 빛의 사용과 입체적 표현기법 등 선구적 기법으로 시대를 앞선 화가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은 예술적인 차원을 넘어 영성과 묵상의 길로 이끈다. 실제로 그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지는데, 서양미술사는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그리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안젤리코는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릴 때 눈물을 흘렸으며, 자주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