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나는 그 사람이요, 나는 너를 지탱할 그 사람이다. 내가 너를 만들었으니 내가 너를 안고 있겠고, 내가 너를 붙들어 구출하리라." (이사야 46:4)
나이가 들어 비로소 눈뜬 오감은 인생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게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이런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절대 구할 수 없습니다.
나이 드는게 두렵기만 할 때
노인이 되어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내가 살고 일하고 느끼는 것이 내 나이에 맞는지 알아내는 감각입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갑자기 할아버지를 흉내 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또한 젊은이를 따라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나이 만큼 늙었을 뿐입니다.
노인의 몸이 젊은이와 다른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체력이 떨어지고 순발력이 둔해지고 몸 여기저기 고장이 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억울해하거나 서글퍼할 일이 아닙니다.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고자 안감힘 쓸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는 어느 시기가 지나면 점점 쇠약해집니다. 정점을 찍고 나면 하강 곡선을 그리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지점까지 떨어집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해지는 몸을 보살피며 쉬엄쉬엄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몸이 늙어 가고 있음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압니다. 가끔 TV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인들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평균 노인의 모습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방송에서 누구든 노력만 하면 이런 젊음을 쟁취할 수 있다고, 그렇지 못한 것은 당신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은근히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과연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우리는 그 너머를 봐야 합니다. 젊은 육체를 유지하는 그 사람이 가진 삶의 열정을 봐야 합니다. 그들이 건강과 젊음 유지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듯, 우리도 무엇에 에너지를 쏟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꼬막 조개를 까는 아흔 살 넘은 노인이 있습니다. 그 노인은 허리가 구부러지고 다리 관절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두 손만은 자유로웠습니다. 구부러지고 주름진 손으로 뱃일하는 아들을 도와 꼬막을 까는데, 그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노인에게는 아들의 살림살이를 위해 더 많은 꼬막을 까야 하는 하루 하루의 목표가 있습니다. 연약한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살아가는 방법인 것입니다.
나이 듦의 상징은 육체적 쇠약에 있습니다. 나이 들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근육이 무르고 뼈가 약해집니다. 거기에 한두 가지 병이 있다면 더더욱 노인다워 집니다. 그러니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기죽거나 자책하지 마십시오. 또 나이 들어서도 젊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되도록 빨리 버리십시오.
24시간 젊게 보이는 데만 신경 쓰느라 삶을 돌보지 못하면 그게 더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중에서 <이근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