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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by HappyPeople IN JESUS 2024. 7. 31.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아 보는 늙은 종에게 말하였다. "너의 손을 나의 다리 사이에 넣어라. 나는 네가,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두고서 맹세하기를 바란다. 너는 나의 아들의 아내가 될 여인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가나안 사람의 딸들에게서 찾지 말고, 나의 고향, 나의 친척이 사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나의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그 종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며느님이 되실 여인이 저를 따라오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주인 어른의 아드님을 데리고, 주인께서 나오신 그 고향으로 가야 합니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였다. "절대로 나의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 말아라. 주 하늘의 하나님이 나를 나의 아버지 집, 내가 태어난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나에게 말씀하시며, 나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너의 씨에게 주겠다' 하셨다. 그러니 주님께서 천사를 너의 앞에 보내셔서, 거기에서 내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그 여인이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한 이 맹세에서 풀려난다. 다만 나의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만은 말아라." 그래서 그 종은 손을 주인 아브라함의 다리 사이에 넣고, 이 일을 두고 그에게 맹세하였다. (창24:1~9)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에 관한 내용입니다. 창세기 22장 17절의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구절과 본문 창세기 24장 60절의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이 두 구절을 사이에 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본문의 내용이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의 결혼관에 관한 내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 전체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열심과 주권,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를 물리치시고 당신의 목적인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는지에 관한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사건입니다. 그 모리아 산 사건은 약속의 자손은 하나님이 준비하신(여호와 이레) 어린양의 대신 죽음에 의해 탄생 된다는 십자가 복음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험에 합격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하시면서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게 바로 종국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질 복의 정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손이 되어 참 행복과 만족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그러기에 그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인 창세기 24장이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4장은 아버지가 종을 보내어 아들의 신부를 불러오는 모양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 성자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를 부르시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이 땅으로 보내심을 받은 보혜사 성령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불러올려지는 우리 성도들의 구원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이 아버지의 계획과 아들의 필요와 성령의 적용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미리 힌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종종 당신을 교회의 신랑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왜 이삭의 아내가 그의 가족에게서 나와야 합니까? 하와가 아담의 살과 피를 담고 태어나 아담과 연합하게 되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예수님과 연합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연합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친족에게서 이삭의 아내가 나오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에 의해 이삭이 준비되었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 이삭의 후손으로 열두 지파가 생기고 그들이 큰 민족을 이루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미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삭이 반드시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삭의 혼인도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주도로 치러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인 창세기 24장을 보면 종이 신부를 간택하러 갔을 때 신부될 자의 대응에 대해 기도를 하는데 리브가가 그대로 반응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신부의 반응까지도 주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그저 향방 없이 이리저리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역사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history(his story)라 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역사를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끝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알파요 오메가라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역사와 인생을 우리의 손에 맡겨 두셨으면 우리는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붙드시고 운행을 하시기에 우리의 구원이 확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구원의 주도권은 하나님께서 쥐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란으로 종을 보낼 때에 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사자가 앞서가서 신부를 준비하실 것이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구원을 얻게 될 신부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준비되는 것이며 그 일은 반드시 실패될 수 없다는 것이 여호와의 사자의 개입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성도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전쟁이 출애굽기에 가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으로 확대되어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이스라엘인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도, 가나안 전쟁을 지시하실 때에도 여호와의 사자를 미리 앞서 보내십니다.

 

이삭의 혼인을 주도하시면서 여호와의 사자를 앞서 보내시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상황과 처지와 능력에 의기소침하여 자기들은 가나안 사람들 앞에서 메뚜기 같은 존재라고 스스로 자평하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이스마엘을 내놓으며 조바심을 떤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은 40년을 광야에서 헤매다 모두 죽습니다. 그게 불신자들의 말로입니다. 하나님은 40년 후에 새 세대에게 나타나셔서 또다시 ‘여호와의 사자가 앞서가서 이룰 것이니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실 테니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입구인 여리고에 이르자 정말 하나님의 군대가 여리고에 먼저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사자가 미리 앞서가서 싸우는 형국으로 여호와의 전쟁은 승리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구원입니다.

 

그 이야기가 본문인 창세기 24장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보낸 종이 이삭의 신부를 만나는 곳은 우물입니다. 구약의 우물가는 신랑이 신부를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야곱도 자기 아내 라헬을 우물에서 만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로 우물에서 만납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우물은 신부가 신랑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신랑이 신부를 만나는 우물의 이야기는 신약으로 넘어가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게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버림받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그대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인의 상태로 사망에 던져져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을 가득 안고 찾아오셨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보낸 종이 아브라함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싣고 신부에게로 떠났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창24:10)

 

그렇게 성령하나님은 하나님의 좋은 선물을 한 아름 품으시고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요16:13~15)

 

그렇게 내려오신 성령께서 마치 아브라함이 보낸 종이 리브가에게 금은 패물과 의복과 귀고리와 코고리를 선물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들을 부어주셨습니다.

 

리브가가 그 금은 패물과 의복을 선물로 받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자기 신랑의 풍요함과 부유함을 미루어 알게 되고 기대한 것처럼 우리 성도 또한 이 땅에서 보증으로 주어진 성령의 역할로 하늘의 풍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하늘의 선물을 부어주신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신랑 예수가 기다리고 계시는 참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안전하게 인도하여 주인이 계시는 가나안 땅으로 무사히 귀환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삭과 이브가의 혼인잔치가 성대하게 치러진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세상에서의 신앙의 여정을 다 마치고 마침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순결한 모습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결국이며 구속사의 결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인 교회를 각양의 보석으로 표현하시고 그들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 칭하십니다.

 

그 말은 이제 주님의 신부인 교회가 주님이 거하실 처소로 거룩하게 완성이 되어 그 무엇보다 찬란하고 존귀한 존재로 완성이 되었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으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그대로 인정하시면 됩니다. 나는 여전히 육체 가운데 살면서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오히려 저항하며 그 하늘의 삶을 막는 존재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나의 그 모습을 카운트하지 않으시고 그 너머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나를 평가해 주신다는 그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깊이깊이 젖어 들어갈 때 우리의 삶은 예수의 삶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세기 24장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구원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던 죄인들에게 먼저 찾아가셔서 그들을 당신의 신부로 삼으시는 구원의 이야기가 혼인 잔치의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그렇게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어 하나님에 의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