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가을,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 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다른 때와는 달리 20년 이상 된 수인들은 물론 모범수의 가족까지 초청된 특별 행사였습니다.
체육대회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본인은 아무쪼록 오늘 이 행사가 아무 탈 없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가족들과 격리됐던 재소자들에게도, 무덤보다 더 깊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아온 가족들에게도 그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미 지난 며칠간 예선을 치른 구기 종목의 결승전을 시작으로 각 취업장별 각축전과 열띤 응원전이 벌어졌습니다. 달리기를 할 때도 어찌나 열심인지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했습니다.
"잘한다, 내 아들! 이겨라! 이겨라!"
"여보, 힘내요! 힘내"
이날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부모님을 등에 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효도관광 달리기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하나 둘 출발선상에 모이면서 한껏 고조됐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선수들이 그 쓸쓸한 등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고, 마침내 출발 신호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주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들의 눈물을 훔쳐주느라 당신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의 축 처진 등이 안쓰러워 차마 업히지 못하는 아버지.... 교도소 운동장은 이내 울음바다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날 달리기 대회는 서로가 골인 지점에 조금이라도 늦게 도달하려고 애쓰는 이상한 경주였습니다.
그들이 원하건 1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함께 있는 시간을 단 1초라도 연장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4: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