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그리스도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2:36)
성경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라는 단어는 ‘주인’ ‘최고권위를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분을 구세주로서만이 아니라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분을 주인으로 받아들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살겠다는 의지도 함께 포함된 것입니다. 그게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만, 구세주로만 받아들이고 그분을 ‘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신앙은 반쪽짜리 신앙이며 그것은 가짜입니다.
은혜의 복음을 정말 알아들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른 이를 밟거나 다른 이의 아픔을 모른 척하며 지나가는 자가 아니라 원수를 도와주는 선한 이웃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요 책임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성경은 너희가 성령을 받게 되면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고 확고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너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사랑을 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자기의 감정이 움직일 때까지 사랑하기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성경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사랑은 감정 이전에 의지이며 선택이라고 말씀합니다.
감정에 의해 나오는 것은 ‘좋아함’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한 요소로 감정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랑 안에는 감정과 함께 의지와 선택이라는 요소도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예로 들면,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미워하십니다. 성경은 분명 그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시편5:4~6)
이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다 죄인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을 미워하시는 상태에서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에 따라 당신의 의지로 미워해야 할 자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사랑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어떤 사람이 개를 좋아합니다. 그 사람이 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집을 잘 지켜줘서, 혼자 외롭지 않게 해줘서,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개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병에 걸려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는 개가 자기에게 주는 어떠한 유익 때문에 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개의 시중을 드는 것이 귀찮아 그런 행동을 합니다. 그 사람은 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의 예를 들어보면, 어떤 수의사는 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개를 보면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렸을 적에 개에게 심하게 물린 기억 때문에 개를 보면 혐오감이 듭니다. 그러나 수의사는 개를 정성스럽게 돌보아야 합니다.
그게 자신의 의무이며 책임이고 자신이 수의사가 될 때 동물을 사랑하겠다는 선서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밥을 주고 약도 먹이고 최선을 다해 그 개의 질병을 고치려 노력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 수의사의 행위는 위선이며 의무이며 책임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그것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개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개를 아주 사랑합니다. 그래서 마치 자기 자식처럼 개를 키웁니다. 그는 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사랑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랑입니다. 물론 그렇게 감정까지도 포함된 사랑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요구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인간들에게 일차적으로 요구하는 사랑은 감정까지 포함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에 오염된 육신을 지니고 있기에 감정까지 포함한 사랑으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실력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요구하는 사랑은 선택적이며 의지적 부분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원수를 좋아하라고 하셨으면 정말 어쩔 뻔했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네 감정이 지금은 그 상대방을 좋아하지 못하더라도 너는 네 의지를 발동하여 사랑의 선택을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남편이 혹은 아내가 혹은 이웃이 죽이고 싶도록 미울 때 그를 향해 도끼눈을 뜨는 대신 커피를 한 잔 타서 은근한 미소와 함께 전해주는 것을 의지적 사랑이라고 합니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미운 감정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 의지를 발동하여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좇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게 된 자라는 신분의 확인이 그러한 선택적이며 의지적인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이해하는 깊이만큼 사람들은 그 분량만큼의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숙해지다 보면 정말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감정까지 동원된 멋진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남을 해코지하는 그런 자리에서 벗어나 오히려 자신 것으로 다른 사람의 부끄러움을 가려주고 도와주는 삶을 통해 이 세상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그러한 사랑하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