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행복은 인생이라는 일이 다 끝나고 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일단 행복해진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의 남편이 외국회사의 아시아지역 사장이셨습니다. 이제 나이가 60대가 되셨는데 여전히 몸은 건강하시고 6개월마다 한 번씩 건강진단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에 갑자기 힘이 없어서 병원에 가셨습니다. 정밀검사를 해보았더니 온 몸의 혈관이 오래된 하수도처럼 꽉 막힌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6개월마다 건강검진을 받아왔는데 그러한 징후는 없었습니다. 결국 얼마 못가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간호하시는 권사님이 말끝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목사님께서 의아해서 “권사님 이렇게 되셨는데 감사하다니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권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평소에 방송설교를 권하셨는데 남편이 귀찮게 여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식물인간이 되어서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라도 들으시라고 귀에 설교방송 헤드폰을 씌워드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말씀을 들으실 때마다 식물인간이신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더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서라도 교만한 남편의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유학중이던 그 집 아들이 급히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와보니 아버지는 식물인간이 되어있고 어머니는 하루 종일 환자 간호에 매달려 있습니다.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권사님이 아들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오는 동안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자꾸 감사하고 기쁘다는 이야기를 아들에게 하셨습니다. 아들 입장에서는 대체 무엇이 기쁘다는 건지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결국 권사님께서는 차를 세우고 아들에게 십자가 복음에 대한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아들은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세계 석학들의 강연을 거의 다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석학도 <지금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답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앞으로 행복해질 것이라면서 행복을 향해 나아가자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석학은 없었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어머니가 이런 상황에서조차 행복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를 통해 아들도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행복은 이 세상 조건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보다 이 세상의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께서 행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혹은 몸이 아파서 행복하지 못한다고 여긴다면 베데스다 연못에서 물이 동할 때 첫 번째로 들어가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38년 된 병자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교인수가 줄어들고 영적 활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개개인의 삶이 복음으로 안식과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 한 사람의 삶속에서 안식과 평안이 먼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삶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미신밀착형 의식구조가 깨져야만 합니다.
그것은 ‘세상 것들이 주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거나 ‘복음의 참 행복은 먼 미래에나 이루어진다’는 잘못된 개념이나 사고인 미신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행복, 안식, 평안은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