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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낙서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 31.

 

지난 봄, 우리 가족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우물이 있고, 그 옆에 풋대추가 대롱대롱 열린 대추나무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셋방을 전전하던 끝에 처음으로 장만한 우리 집이라서 식구들은 모두 들떠 있었습니다. 말썽꾸러기 아이들 때문에 언제나 집 주인의 잔소리를 귀에 달고 살아야 했던 엄마가 누구보다도 좋아하셨습니다.

이삿짐을 풀자마자 나에게 주어진 일은 담벼락에 빼곡히 써 있는 낙서를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서툰 글씨, 어딘지 모를 주소와 간략한 약도...

"야. 다 지웠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비비고 나와보니 어제 애써 지운 글씨들이 모두 되살아나 있었습니다.

"어? 이상하다. 도깨비가 왔다 갔나? 아니면 달빛에 글씨가 살아나는 요술 담장인가?"

정말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다시 낙서를 지우고 엄마한테 검사까지 받았습니다.

"깨끗하게 잘 지웠네, 우리 착한 딸."

엄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그날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매번 누군가 전날과 똑같은 낙서를 가득 해놓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나는 낙서를 지우면서 누군지 잡히기만 하면 혼을 내주겠다고 마음먹고 저녁 내내 망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두 소년의 그림자가 담장에 어른거렸습니다. 범인이 분명했습니다.

"형,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이거 보고 이사 간 집 찾아올거라고 그랬지?"

"물론이지, 아빠는 집배원이셨으니까 금방 찾아오실거야."

형제는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가 자기들이 이사 간 집을 찾아오지 못할까봐 담장에 약도를 그리고 또 그렸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이후 낙서를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계시록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