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에베소서 2:1~3)
어떤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품은 열망은 누구보다도 뜨거웠습니다. 그는 자유를 갈망했고 누군가의 지시나 통제를 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 진짜 행복이고 자유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자기 뜻대로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며, 말 그대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어느새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자유롭고 멋져 보이는 삶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과 불안이 끊임없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한 교회를 찾았습니다. 처음엔 거부감이 컸습니다. “종교는 약한 사람이나 찾는 거야.” 그렇게 비웃으며 살았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설교 말씀 한 구절이 유독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1) ‘죽었다고? 내가?’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분명 살아 있고, 생각하고, 계획하며, 꿈꾸는 자신인데... 어떻게 죽었다는 말인가?
설교자는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이미 죽은 존재입니다. 살아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영혼은 본질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 말에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 누구보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그를 향해 “너는 죽었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마귀의 뜻을 따르는 자로 말입니다.
그날 이후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는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했을까? 왜 남들의 평가에 목숨을 걸었을까? 왜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말하면서도, 매일같이 욕망과 비교와 죄책감에 휘둘렸을까?
그는 마치 사슬에 묶인 노예 같았습니다.
자기 뜻대로 살려고 했지만, 실은 죄와 욕망의 종이었습니다. 음란한 생각, 분노, 시기, 자존심, 중독… 그것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 모든 것이 자유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성경이 말하는 '죽은 상태'가 무엇인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죄란 단지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나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하는 본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어느 날, 복음을 전하는 한 목사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소주 반 병씩 마시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격은 불같고, 말은 거칠고, 욕망을 참지 못하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 모든 것이 끊어졌습니다. 내가 바뀐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말에 깊이 사로잡혔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바뀔 수 있는가? 도대체 복음에는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인가?
그 후 그는 예수님을 더 깊이 알기 시작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듯이,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주어졌다는 사실과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고, 예수님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다는 진리를 그는 복음 안에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로마서 5:18~19).
이제 그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에서 오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믿었지만,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삶이야말로 가장 깊은 속박이라는 것을 지금은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욕망을 절제할 수 있게 되었고, 죄에 끌려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눈물이 나고 때로는 실수하지만, 그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로서, 이제는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해 “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진짜 자유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 때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행복은 내 욕망을 채울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할 때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고 싶은 대로’는 본질상 하나님을 거스르는 방향입니다. 죄의 본성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깊은 뿌리에 자리 잡은 불순종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 죽음에서 우리를 살려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십자가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며,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입니다.
자유는 무책임한 방종이 아니라, 은혜 아래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 복음의 은혜를 믿고, 오늘도 다시 예수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복음 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와 평안을 삶으로 증거하십시오.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는 증거는 오늘 우리가 ‘순종할 수 있음’ 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깁니다. 그 은혜 안에서 오늘도 자유하십시오.
에베소서 2장은 우리가 과거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으며, 세상 풍속을 따르고 마귀의 권세 아래 살던 자들이었다고 선포합니다. 바울은 이방인만이 아니라 유대인도 “우리도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죄인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죄 가운데서 나며 죄 가운데 자라고 죽음에 이르는 존재들입니다.
죄란 단지 도덕적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도적 반역입니다. 아담 이후의 인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자유를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마귀의 종으로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인간의 불순종은 결국 자기가 자기 인생의 왕이 되려는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이 교만이 바로 아담의 범죄요, 우리의 본성입니다.
세상은 인간이 본래 선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환경과 교육만 있으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가장 완벽했던 에덴에서조차 타락했습니다. 죄는 외부의 영향보다 내부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절제하고 순종할 수 있는 삶입니다. 참된 자유란 육체의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비참하게 하려는 말이 아니라, 복음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인간의 철학과 도덕, 훈련과 환경 개선으로는 바꿀 수 없는 죄의 본질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의 순종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순종하며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