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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7.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에베소서 2:1~3)

해리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의 일입니다.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께서 시장을 지나고 있는데 구세군 사역자들이 시장 어귀에서 한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구세군 사역자들은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을 알아보고 즉석에서 설교를 부탁드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육체적인 부활을 통해서 어떻게 죄인들을 구원하시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듣고 있던 어떤 신사 한 분이 명함 뒤에다 무엇을 적어서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기독교를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다니던 무신론자요 불가지론자였던 유명한 초기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 명함 뒤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선생 나는 당신과 다음과 같은 문제로 토론하겠다는 도전장을 냅니다. 다음 주일 오후 4시 아카데미 과학관에서
‘불가지론과 기독교의 대결’이라는 제목으로 공개 토론을 합시다. 비용은 내가 다 대겠습니다.”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은 그 카드를 큰 소리로 회중들에게 읽어 주었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이 도전에 매우 관심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다음 주일 3시에 이미 다른 집회에서 설교를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서두르면 네 시쯤이면 여기 과학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요하다면 그 집회에 다른 강사를 소개시켜주고 이 토론에 참여하겠습니다. 그러나 토론을 하기 전에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증인을 몇 명 데리고 왔으면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주장하는 불가지론과 무신론을 믿고 성경과 기독교를 무시하기로 한 어떤 사람이 구제불능의 삶에서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어 그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한 사람 데리고 오시오. 그리고 가난하고 곤고하고 품행이 바르지 못하여 사창가 같은 데서 정욕의 노예가 되어 부패한 삶을 살다가 결국 모든 걸 탕진하고 죄의 삶 때문에 파산하고 파멸된 여자, 그러나 어느 날 선생이 주장하는 불가지론과 무신론에 대한 강연을 듣고 ‘아, 하나님은 없는 거로구나’ 하고 깨달아 그 지저분한 삶 속에서 건짐을 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여자를 한명 데리고 오시오."

"만일 선생께서 불가지론이 해낼 수 있는 표본으로 이런 두 사람을 데리고 오실 수 있다면 저는 다음 주에 예수 믿고 변화되어 행복한 삶을 사는 기독교인 100명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저는 제가 앞에서 묘사한대로 죄에 빠져 시궁창 같은 삶을 살다가 선생이 비웃고 있는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게 구원받고 행복한 자유인들을 그 토론의 자리에 증인들로 세우겠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한 소녀가 외쳤습니다. “선생님, 저도 갈게요.” 구세군 사역자가 외쳤습니다. “우리 구세군에서 40명 보내겠습니다.” 여기저기서 그렇게 변화된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나섰습니다. 그 신사는 손사래를 치며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서 미국까지 배를 타고 여행을 한다고 합시다. 아마 몇 달은 걸릴 것입니다. 며칠은 배 안에서 경치도 구경하고 좋겠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면 점점 답답해질 것입니다. 걸어서 조금만 가면 배 고물 벽이 나옵니다. 사방 어디로 걸어도 더 이상 넘어가지 말아야 할 난간이 있습니다.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말 자유로운 곳은 어디입니까?

아무리 가도 막힘이 없는 곳 바다 속입니다. 그 때 만일 승객들이 자유롭고 싶어서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가기로 한다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두 죽습니다. 배 안에서 제한된 자유이지만 선장의 지시에 잘 따르고 배를 의지해서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사람이 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 위에서 저 아래 상어에게 쫓겨서 다리 한 짝 잘리고 팔 한쪽 너덜너덜하게 되어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야, 참 자유롭겠다, 진짜 재미있겠다.”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 사는 순간 죄인은 가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아 그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진정 평안과 안식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의 눈에는 상어한테 물려서 전부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런 모습을 오히려 자랑합니다. “너 이런 거 할 줄 알아? 너 이런 거 있어?” 그렇게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로 태어나는 죄인들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은 인간의 비참한 실존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인간은 단순히 병든 존재가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라고 선언합니다. 이 죽음은 곧 하나님과의 단절이며, 세상의 풍속과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저 실수나 환경 탓이 아니라, 죄의 본성과 자아의 욕심으로 인해 스스로 망가진 존재였던 것입니다.

해리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의 일화는 이 말씀의 실제적 적용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복음을 조롱하며 무신론을 주장하는 자 앞에서 단순한 논리나 철학이 아닌 ‘삶의 변화’로 반박했습니다. 단순한 언쟁이 아닌, 변화된 인생들의 증언이 진리를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단순한 종교적 위안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해방이요, 죽은 영혼의 부활입니다. 복음을 통해 중독에서, 절망에서, 음란과 탐욕의 수렁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증거가 됩니다.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의 요청은 단순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사상으로 변화된 인생을 단 두 명만 데려오십시오. 나는 백 명을 데려오겠습니다.” 이 강력한 제안 앞에서 무신론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인간의 사상은 사람을 논쟁에선 이길 수 있어도, 삶을 변화시키진 못합니다. 진리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유를 외칩니다. 내 마음대로, 내 방식대로, 내가 주인 되어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이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더 깊은 노예 상태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율을 선택한 인간은 결국 죄와 본능의 종이 되고, 더 깊은 절망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배와 바다의 비유는 이것을 잘 설명합니다. 배 안에서의 자유는 제한적입니다. 마음대로 달릴 수 없고, 규칙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생명을 지켜주는 공간이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바다 속은 끝없는 자유처럼 보이지만, 거기엔 생명이 없습니다. 뛰어들면 죽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때, 오히려 파멸로 향하게 됩니다. 상어에게 뜯긴 모습이 ‘멋있다’고 착각하는 세상 속에서, 참 자유는 하나님 안에 있다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주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고 하신 주님의 초청은 우리를 억압이 아닌 쉼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난 자는 이제 더 이상 세상의 풍속을 따르지 않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지 않고, 육체의 욕망에 이끌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자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의 삶으로 그 증거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혹시 우리는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가? 배 안에 머물며 제한된 자유를 누리되 생명과 안전을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바다로 뛰어들어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려다 죄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가?

오늘도 다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그 은혜의 배 위에 타기를 결정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에 외치십시오. 진짜 자유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서 5:1)

자유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 없이 살겠다고, 내 힘과 내 뜻으로 살아보겠다고 나섰던 저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저는 자유를 꿈꾸었지만, 결국 죄의 노예로 전락했고, 그로 인해 평안도 기쁨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저를 살려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진짜 자유는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을 믿게 하시고, 주님의 뜻 안에서 순종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다시는 헛된 자율을 좇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나아가 저도 변화된 삶의 증인이 되어, 세상 속에서 복음의 증거로 살아가게 하소서.

날마다 주님의 배 안에서 평안히 걷게 하시고, 바다 속 자유라는 거짓에 속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