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7-18)
여섯 번째로 인간의 타락이 가져온 무서운 저주가 ‘환경의 파탄’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땅은 인간에게 소산을 풍성하게 내 주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해서 겨우 먹고 살 만큼의 양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거기다가 식물들도 가시와 엉겅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로 양식이 부족하게 되자 짐승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짐승들에게 송곳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은 이렇게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도 불의한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언제든지 자연을 훼손하고 자연은 그 복수로 인간들에게 태풍과 기근과 홍수로 보답합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 현상이 이렇게 진행이 되면 앞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동식물이 멸종된다고 합니다. 이게 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재앙입니다.
그런데 2,000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폭풍이 이는 바다를 향해 외쳤습니다. ‘바다야 잔잔하라’ 그 사건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어긋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스리고 복종하는 관계로 회복되었음을 암시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
회복된 모든 피조물이 이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 근거하여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구별이 사라지고 자신의 자랑과 욕심을 위해 남을 공격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라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화해하고 인간끼리 화해하고 하나님과 인간이 화목하게 되는 그런 온전한 회복의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이미 그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이 땅에서 구체적인 사실로 나타내며 우리 스스로 조금씩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 죽음의 이유를 ‘당신 백성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들을 은혜로 구원해 주신 분을 위해 살게 하려고’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후5:15)
구원받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자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의 인간의 실패가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주었습니까? ‘내 백성들아, 이제 너희를 위해서만 살던 그 이기적인 삶에서 돌이켜 내 말을 듣고 나에게 순종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 내거라’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인간 타락의 결과 우리에게 나타난 급격한 변화와 하나님의 저주를 살펴보면서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노숙하는 노숙자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그들 모두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들 모두가 어떤 중독에 의해 노숙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술, 마약, 도박 등등의 중독에 의해 결국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노숙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독은 결국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중독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 우리도 모두 돈 벌기에, 일에, 자식에, 다툼에, 시기와 질투에, 커피 등에 중독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모양은 다르지만, 모든 중독은 다 같은 기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무언가에 자신을 중독시키며 사는 것은 두려워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맨정신으로 살기에는 죽음과 그 부산물인 질병, 가난, 전쟁, 고통 등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쥐고 있는 어떤 절대자가 두려워서 그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맨정신으로는 늘 부족한 것만 같은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에 중독이 되어 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인간 타락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죽음도 그 죽음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처했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건 단지 일시적인 역할일 뿐이지 우리의 실존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우리를 중독시키고 있는 모든 세상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엉뚱한 것 두려워하느라 시간 허비하지 말고 또한, 괜히 부끄러움에 자신을 자학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잘 살아내는 데에만 힘쓰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