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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의 경로, 인간의 타락적 본성, 예수 그리스도와 타락의 극복

by HappyPeople IN JESUS 2024. 3. 2.

 

선악과를 들고 생각에 잠겨있는 하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장 6절)

 

인간의 타락적 본성

사단의 미혹에 빠져 하나님의 명령이 우습게 여겨지자 여자는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욕망을 품고 바라봅니다. 그랬더니 정말 보암직도 했습니다. 안목의 정욕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든 생각이 먹음직도 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육신의 정욕입니다. 또 한 가지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이생의 자랑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자신을 위해서 살게 되었을 때 인간에게서 나오게 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얼마나 인간을 피폐하게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교육하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작업이 지금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 사건은 단순하고 우발적인 인간의 타락을 묘사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사건을 통하여 인간들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라도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육신을 즐겁게 해 주는 것,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 우리들의 삶에 대해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지나갈 것이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것들도 다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요일2:15-17)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세상을 사랑하는 타락한 인간들의 문제를 세 가지로 지적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과 대조하여 기록된 것이 17절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잠시 후면 사라져 버릴 것들이므로 너희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라는 권고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의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기록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림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닥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타락의 극복

그런데 2,000년 전에 베들레헴에 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가해 주신 것입니다.

 

이 창세기 3장의 실패가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회복이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광야 시험 사건입니다. 마귀가 40일을 굶주린 예수님께 다가와서 속삭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육신의 정욕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의 육신의 정욕을 부추깁니다.

 

그때 주님께서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대답이 바로 아담과 하와의 입에서 나왔어야 하는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육신의 정욕을 누르는 자들입니다.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인간에 의해 그냥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바로 그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 이외의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었던 최고의 풍요 상태에서도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게 온전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우리 주님은 40일을 굶주린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고자 육신의 정욕을 누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가해 주신 것입니다. 그 승리가 우리 것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첫 번째 아담과 하와처럼 살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은혜를 쏟아부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로 새롭게 창조해 주실 것임을 창세기와 마태복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저주로 몰아넣은 첫 번째 아담과 하와의 육신의 정욕이 해결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마귀가 주님을 시험한 것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보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수종을 든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네 힘으로 너를 증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입니다. 종교적 욕망을 부추긴 것입니다.

 

주님은 사단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저주로 몰아넣은 이생의 자랑이 해결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마귀는 주님께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자신의 말만 들으면 그 세상을 모두 주겠다고 미혹했습니다. 안목의 정욕입니다. 주님은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시고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목의 정욕이 해결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새로운 창조

성경은 주님이 타락한 아담의 후손 중에 마지막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사가 없이 죽어 버리심으로 더 이상 아담의 후손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후로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의 후예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백성들 속에 아담의 대를 끊어 버리시고 아담이 실패한 모든 것들을 온전하게 회복시킨 주님의 ‘회복’을 그들에게 전가해 주신 것입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여기 보면 사도 바울이 주님을 가리켜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은 마지막 아담이 되셔서 그 아담에게 떨어진 저주를 모두 안고 죽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타락한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떨어진 하나님의 저주는 모두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저주의 원인이 되었던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은 우리와 관계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시험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안목의 정욕에 끌려다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의 정욕에 맥을 못 추고 넘어갑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생의 자랑에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그러한 것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이고 이기라고 독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생각과 사견을 덧붙이거나 제하여 버릴 때 우리에게 닥치게 되었던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