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하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오너라. 그들과 떨어져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라. 나 주가 말한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나 전능한 주가 말한다.’ (고후6:16~18)
이 고린도후서의 말씀이 바로 창세기부터 시작되어 흐르는 하나님 언약의 실체입니다. 그 하나님의 언약이 창세기 5장의 족보와 누가복음 3장의 족보에서 실체로, 역사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이 역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아버지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만들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인 것을 안 자녀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자녀들에게서 보이듯이 자녀들은 아버지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 아버지를 닮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게 성경이 굳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이렇게 실질적으로 밝히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서 아버지의 성품과 아버지와 공유할 수 있는 속성들을 우리에게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속성들을 닮아가며 살아내는 삶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그분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삶은 우리가 이 땅에서 그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범죄를 지적하거나, 그들에게 경고하거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에서 ‘우리 똑바로 살자, 범죄 하지 말자’라는 말과 함께 늘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상태로 표현하십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아야 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녀인 우리가 그분을 잘 배우고 알아 그분을 닮아야 우리에게서 죄를 몰아내고 거룩한 자로 지어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책으로 학자들은 욥기를 꼽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족장시대 초기인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이고 욥기에 기록된 여러 가지 정황들이 그 시대의 일들을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욥기가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책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쓰인 성경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야 하겠습니까? ‘기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 그 책의 중심 내용이어야 할 것입니다.
욥기는 기독교를 권선징악의 문제로 사람의 잘잘못에 관해 상과 벌을 주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그분께 온전히 항복하여 그분을 아버지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당대에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선하게 살았던 욥에게 환난이 닥쳤습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욥에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친 것입니다.
욥이 욥기 31장에서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라고 항변하자 하나님께서 38장부터 무려 3장에 걸쳐 당신이 누구이시며 어떤 일을 하신 분인지를 욥에게 직접 설명해 주십니다. 그러자 욥이 결국 하나님 앞에서 항복을 합니다.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욥42:1~6)
이게 욥기의 결론입니다. 그러니까 욥기가 이야기하는 기독교는 단순히 권선징악의 그런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그 아버지에게 항복하며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며, 그 하나님이 우리의 진짜 아버지라는 것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분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의뢰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 그분의 뜻에 만족하며 그 뜻에 맞게 사는 삶이 진짜 신앙인의 삶이며 하나님을 닮아 가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월자이십니다. 초월은 제한된 이성과 시각으로는 절대 감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월자이신 하나님은 제한된 이성과 시각 안으로 들어오셔야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설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과 속성과 그분의 위대하심을 설명해 주고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이 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오늘도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