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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언약

by HappyPeople IN JESUS 2024. 6. 18.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주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을 가지고 오너라.' 아브람이 이 모든 희생제물을 주께 가지고 가서, 몸통 가운데를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비둘기는 반으로 쪼개지 않았다. 솔개들이 희생제물의 위에 내려왔으나, 아브람이 쫓아 버렸다.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거라. 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의 자손을 종살이하게 한 그 나라를, 내가 반드시 벌할 것이며, 그 다음에, 너의 자손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러나 너는 오래오래 살다가, 고이 잠들어 묻힐 것이다. 너의 자손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 벌을 받을 만큼 이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창세기 15장 7~17절)

 

본문 8절을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아브라함이 또다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국어사전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런 의심 없이 신뢰하는 것’으로만 정의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에 그러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을 우리는 주관적 믿음이라 하는 것이고 그러한 주관적 믿음이 나올 수 있도록 먼저 선행적으로 주어지는 객관적 믿음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의롭게 한 믿음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객관적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객관적 믿음에 의해 주관적 믿음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믿음은 발휘하는 자에게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강한 힘에 의해 끌려가는 형국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믿음을 가리켜 ‘고삐를 쥔 자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구원의 전 과정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되고 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은혜의 왕 노릇’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타락한 인간들이 어떠한 거대한 손에 붙들려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가 왕 노릇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섬기며 살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불가항력적으로 덮쳐 왔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아브라함을 죄의 상징인 바벨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해 내시고 그를 약속의 땅으로, 모리아 산으로 몰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바울이 말하는 은혜의 왕 노릇인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을 의인 되게 했던 아브라함의 믿음 또한 은혜의 왕 노릇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는 것이고 그 의인되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우리에서 왕 노릇 하면서 우리를 통치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의 자녀로 성숙시켜 완성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의 왕 노릇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완성이 되는 날까지 유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빠져 원수 되었던 자들에게 아들의 피를 부어 그들을 살려내셨다면 이제 죄의 자리에서 빠져나온 의인들을 더욱 신경 써서 완성 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해 죄에서 해방된 자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반드시 성숙시키시고 완성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게 구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임한 그 은혜의 왕 노릇은 갈대아 우르에서 택해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어 그가 우상을 섬기고 있을 때에도 유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왕 노릇은 그를 모리아 산으로, 아니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 나라로 몰고 가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의 삶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왕 노릇 하에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착착 움직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역사는 시작부터 종말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왕 노릇 아래에서 그분의 계획대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은 모든 것을 계획하고 관장하고 통치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라는 왕이 창세전부터 하나님 백성들의 왕이셨습니다. 그리고 은혜의 왕 노릇으로 말미암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그 과정 또한 미리 계획해 놓으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쉬운 말로 구속사 안에서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그 사건의 때는 은혜의 왕 노릇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하나님의 작정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브라함보다 500년이나 뒤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500년 뒤의 일을 미리 다 계획해 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애굽에서 400년이나 머물러야 하는 이유도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찰 만큼 찬 뒤에 그들을 심판하셔야 하기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400년간이나 종살이를 해야 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아모리 족속의 죄가 관영하게 된 것도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전에 나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때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에게 찾아가셔서 그를 불러내는 사건과 그때까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는 때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게 되는 때까지 그리고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찰 대로 차게 되는 시기까지 창세전에 이미 다 그림으로 그려놓고 계신 것입니다. 그게 왕 노릇하는 은혜의 주권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당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대가족 안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롬8:28~30)

 

하나님은 미리 정해 놓으신 당신의 백성들을 창세전에 택하시고 그들을 이 역사 속에서 부르시고 그 부르신 자들을 이미 영화라는 완성의 자리에까지 앉혀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은혜의 왕 노릇이 창세전부터 우리의 삶에 개입하여 우리의 완성의 자리인 영화의 자리까지 집요하게 우리를 좇으며 결국에는 완성을 시키신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 모든 시제가 완료시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은 이미 시작부터 완성까지 하나님의 작정 속에 다 들어 있었고 심지어 은혜의 왕 노릇은 개인의 수명까지도 주관하고 계십니다.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창15:15)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수명까지도 정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관장하시고 완성해 가시는 주관자이시며 한번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내는 분이기에 본문의 내용처럼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어리광을 부려도 그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계속 설득하시고 가르치시고 심지어 증표까지 주시면서 그를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게 은혜의 왕 노릇이며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왕 노릇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함에게서 생성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하시고 주도해 가시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이기에 믿음을 받는 사람 측에서는 잦은 실수와 불신앙의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잦은 실수 속에서도 은혜의 왕 노릇은 우리를 집요하게 이끌어 반드시 우리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함이 나오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대로,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염원하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빌2:12~13)

 

이렇게 은혜의 왕 노릇은 그저 우리를 바벨론에서 건져내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은혜의 왕 노릇은 우리 안에 소원을 두게 하시고 행하게 까지 만드시는 왕 노릇입니다. 바로 그 은혜가 우리를 통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교회에게 이런 감격스러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롬8:35~39)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삶 속에서 삐져나오는 불신앙의 모습들 때문에,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표준보다 한참 모자라 보이는 믿음 생활 때문에 자괴감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주도권은 하나님의 은혜가 쥐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 우리의 고삐를 꽉 움켜쥐고 계시며 반드시 우리를 완성의 자리에 앉히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까지도 선용하셔서 우리를 자녀답게 만들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의 왕 노릇, 그 은혜의 왕 노릇에 의해 우리는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은혜의 왕 노릇에 의해 우리는 결국 이러한 모습으로 완성됩니다.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빌3:21)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우리의 낮은 몸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은혜의 왕 노릇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부족한 믿음에 오래 참으십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된 자라면 아브라함은 벌써 그의 죄와 불신으로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타지에서 횡사하는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삶을 지켜보아서 알지만 아브라함도 그 당시의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던 아브라함의 생에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하여 그의 삶에 왕 노릇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은혜가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