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법상 “죄”라고 정해 놓은 것만, 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똑같이 우리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바를 탐욕스럽게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자기 행복만을 위해, 자기 욕심만을 위해 살아가는 죄인들인데 정말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살아갈까요?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못 느끼고 사는지 아십니까? 역설적이지만 죄인들은 인생의 목표를 ‘행복’에다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면 그 가정의 최고 목표를 ‘행복’으로 정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그 행복을 위해 노력해 주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다가 그 행복을 깨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 못 참습니다. 서로 속으로 “저 인간이 조금만 노력을 해 주면 우리 가정은 행복할 텐데.”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목표한 행복이 모자라면 인간은 불행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너무나 간절하게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 명령에 대한 ‘책임’이며 ‘순종’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의 행복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것이듯이 가정의 목표 역시 ‘순종’과 ‘책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책임을 지는 법을 가정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남편은 예수님의 역할을 하고 아내는 교회의 역할을 하고 아이들은 그로 말미암은 언약의 후손의 역할을 하며 이 땅에서 천국을 배우고 오라고
우리에게 내려진 명령이며 거기에 반응하는 것을 우리는 ‘책임’이라고 하고 ‘순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난 남편이라 할지라도, “저 사람 때문에 내가 불행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남편이 커다란 실수를 했다고 해도 “에그, 이 병신아, 그럼 그렇지 네가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뭐가 있냐?” 그러면 우리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이스라엘이 범한 잘못이 무엇입니까?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이 바보같이 맨 날 얻어터지고 조롱당하고 심지어 자기들을 놔두고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향해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런 무능한 인간, 저게 무슨 신랑이며 메시아냐? 이스라엘은 그래서 망한 것입니다.
아무리 무능한 남편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역할로 가정에 주셨으면 거기에 따르라는 것입니다. 속이 터져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순종을 배우고, 아량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인내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천생연분을 만나서 어떤 면에서든지 완벽하고 행복한 가정 이루어서 천년만년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통해서 천국을 배우고 천국 백성의 자질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역할을 맡은 남편은 아내를 위해 언제든지 십자가에 달릴 준비를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