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유대인의 인생 독본인 탈무드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다. 감사하지 못하면 마음과 육체는 병들기 쉽고 불행하게 된다. 신체는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감사하면 맥박이 고르게 되고 위장의 활동을 도와 소화력을 증진시켜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들기 때문에 건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불평을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맥박을 급하게 하는 동시에 위장의 운동을 정지시켜 뱃속으로 들어온 음식의 소화를 거부해 건강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소유의 유무와 환경의 조건에 상관없이 감사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 국민들을 대상으로 행복 지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행복 지수가 물질적 소유 또는 환경의 조건에 반비례하게 나타나 행복의 척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행복한 나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최빈국들이 뽑혔고 반면에 경제 대국이며 최고의 문화시설과 교육환경, 자연환경 등을 고루 갖춘 선진국들은 하위권으로 밀려나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런데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다. 천연자원도 없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교육 시설이나 의료시설도 열악하다. 그렇다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문화나 레저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는 양극화되어 있고, 뇌물과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행복 지수는 높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할 직장도 없고, 공부할 학교도 없고, 심지어 몸이 불편해도 찾아갈 병원도 없다. 그러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작은 것에 감사하며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들과 이웃들 간에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행복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행복의 요인을 보면 선진국의 경우에 소득 상승이 더 이상 개인의 행복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비해, 가난한 나라의 경우에는 소득이 조금만 나아져도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또한,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인간관계의 끈끈한 정이 삶의 행복으로 이어진 반면, 선진국의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소외감과 소유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불행을 더욱 심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행복 지수는 객관적인 조건이나 지표보다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에서 차이를 보인다. 사실, 행복에는 절대 기준이 없다. 어느 수준이 되어야 행복하고 불행한 것인지 정답이 없는 것이다.
행복에는 교과서나 참고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이나 모범 답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다만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행복의 크고 작음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에 비례한다.
행복은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자족하는 것이다.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 없는 것에 대한 불평이 있는 것에 대한 감사로 변할 때 비로소 행복한 인생을 되는 것이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있는 것에 대해서 자족하고, 작은 것이라도 내 삶을 채워 주는 조건이 있다면, 감사하며 사는 것이 곧 행복이다.
그래서 칼 힐티는 그의 ‘행복론’에서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을 감사로 뽑았다. “감사하라, 그러면 젊어진다. 감사하라, 그러면 발전이 있다. 감사하라, 그러면 기쁨이 있다.”
지극히 작은 일에도 감사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 지수도 높다. 사람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살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감사는 분명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함의 깊이에 달려 있다.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 평생감사 중에서 <전광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