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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상 위에 선 견고한 보좌 -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의 다스림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3.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시편 93:1~5)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교회에서 대표기도를 할 때 자주 듣는 이 고백이 우리 입술에서 나올 때,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떤 기대가 꿈틀거리고 있을까요? 우리는 '사'가 아닌 '생'을, '화'가 아닌 '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평안하게, 형통하게.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다스려주시기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마치 하나님을 우리 삶의 보험회사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위험할 때 보호해주고, 어려울 때 도와주고, 축복해주는 분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허락하신다면? 그때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시편 93편 1절은 선포합니다.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하지만 창문 밖을 내다보십시오. 뉴스를 켜보십시오. 세계는 온통 흔들리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로, 전쟁과 분쟁으로, 정치적 혼란으로. 나라들이 무너지고, 체제가 바뀌고,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개인의 삶은 어떻습니까?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불안합니다. 내일 직장을 잃을까, 건강이 나빠질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노후가 불안할까.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세계가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씀은 거짓말입니까?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선언에 불과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견고함'과 '흔들리지 않음'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변하지 않고, 상황이 안정되고,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을 '견고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견고함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견고함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는 것 자체입니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이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진정한 토대입니다.

욥을 기억하십니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재산도, 자녀들도, 건강까지, 재 더미에 앉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의 종기를 긁으며 고통 속에 신음하던 그 사람입니다. 욥의 아내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녀가 본 것은 무너진 현실뿐이었습니다. 그토록 경건하게 살던 남편이, 하나님을 섬기며 죄짓지 않으려 힘썼던 남편이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이란 말인가?

그녀의 분노와 절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반응하지 않을까요? "하나님, 이건 불공평합니다. 이건 부당합니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욥은 달랐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이 한 문장 속에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화도 주시는 분입니다.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욥은 땅에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흔들리지 않는 삶입니다. 환경이 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압니다." 이 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항상 풍부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때로 부족함을 경험했고, 때로 풍족함을 누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느 상황에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가 초인적인 의지의 소유자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비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풍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원치 않는 것은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것을 그분의 선하신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보기에 이 세상은 온통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이 잘되고, 선한 사람이 고통받습니다. 정의는 무너지고, 거짓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세상을 보며 어떻게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피상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표면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더 깊은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한 영이 세상을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 불의의 길로 이끌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그 가운데서 구출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위이며 위대하신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는 세계 뒤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최종 승자는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시각입니다. 우리는 너무 얕게 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직장 걱정이 앞섭니다. 건강검진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해합니다. 자녀의 성적표를 보며 한숨을 쉽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염려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전부이고, 이것이 우리의 삶을 좌우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달라집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루임을 봅니다. 내 생명의 다음 호흡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봅니다. 내가 겪는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계심을 봅니다. 이것이 깊이 보는 것입니다. 표면 너머를 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거센 파도가 우리를 덮칠 때, 우리는 그 파도만 봅니다. 하지만 그 파도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신 분을 봐야 합니다. 그분의 능력이 파도보다 크십니다. 그분의 권위가 모든 혼란보다 위에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권위와 다스림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증거되기를 원합니까?"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봅시다. 우리가 원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악한 사람이 즉시 심판받는 것?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응답되는 것? 믿는 사람은 절대 사고나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것? 20층 건물에서 떨어져도 멀쩡한 기적?

만약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를 증명하신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이익을 위한 계산일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설사 그렇게 산다 해도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아무리 건강하게 살아도, 아무리 기적을 경험해도, 결국 우리는 죽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는 영원한 사망, 즉 멸망이라는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20층 건물에서 떨어져 죽지 않는 것이 기적입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육체의 구원일 뿐입니다. 그 사람도 결국에는 죽습니다. 진정한 기적은 멸망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육체적 기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기적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것을 시시하게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합니다. "당장 내 병을 고쳐주지도 않고, 내 통장에 돈을 채워주지도 않으면서 무슨 하나님이냐?" 이렇게 비웃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적 규모의 기적입니다.

시편 93편 5절은 선포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시편 기자는 무엇을 보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증거가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그가 실험실에서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보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식의 증거가 있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 대상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수식으로 증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확실한 증거입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의 손에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다니,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까?

하지만 믿는 자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 십자가를 믿게 하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권위로 일하시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지성이나 논리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우연이 사라집니다. 아침 해가 뜨는 것도, 저녁이 되는 것도, 내가 숨 쉬며 살아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다스림의 증거가 됩니다. 시시한 것이 없어집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우리는 흔들리고 불안해합니까? 왜 여전히 염려하고 두려워합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이 아직 어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시시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뜰 수 있었던 것, 시시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또 하루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것, 시시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생명과 건강을 주신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 시시합니까?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표적과 기사를 보기 원합니다. 하늘이 갈라지고, 천사가 내려오고,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당신의 주권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신다면..."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가 강하다고 착각할 때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내 힘으로, 내 지혜로, 내 노력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됩니다.

"하나님, 저는 흔들립니다. 저는 약합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견고하십니다. 당신의 보좌는 영원부터 견고히 섰습니다. 제가 당신의 다스림 아래 있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들립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파도가 치면 흔들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바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보좌는 영원부터 견고히 서 있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분의 권위는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높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흔들리는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누구의 다스림 아래 있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십니다. 복도 주시고 화도 주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확실한 증거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그 믿음 자체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권위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십니다. 그분의 보좌는 영원부터 견고히 섰습니다. 우리는 흔들리지만, 우리를 붙드시는 그분의 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