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1535 간음한 여인을 통해 본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한복음 8:11)아침 햇살이 비치는 성전 마당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죄인을 끌고 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선생이여,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그들의 질문은 단순한 율법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시험하기 위한 덫이었습니다. 율법을 따르자니 사랑이 부정되고, 사랑을 택하자니 율법이 무너지는 그들이 만들어낸 함정 속에서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몸을 굽히셔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율법은 거룩한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입니다. 그 앞에 설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땅에 쓰신 그.. 2025. 11. 12.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21)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 임하나이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분명한 그림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다윗 왕국의 영광이 다시 세워지고, 눈에 보이는 정치적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 그들이 기다린 ‘하나님 나라’였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들의 기대와 완전히 다른 나라.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2025. 11. 11. 오직 그 이름으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세상은 ‘착한 일’을 심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병자를 일으켰습니다. 누구나 감동할 만한 일이지만, 세상은 그 일을 ‘착한 일’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재판정에 세웠습니다. 왜일까요? 세상은 자기 힘과 명예, 체제를 흔드는 복음을 결코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착한 일, 곧 구원의 역사는 언제나 세상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습니다.성경이 말하는 ‘착한 일’이란 단순히 선행이나 도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 때 “보시기에 좋았다(토브)” 하신 그 ‘좋음’이 회복되는 일, 즉 인간이 본래의 자리, 하나님의 뜻 안으로 돌아오는 .. 2025. 11. 11. 경험 그리고 기억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다윗의 이 고백은 단순한 시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망의 현실 속에서 터져 나온 ‘경험자의 고백’입니다. 그는 지금 왕궁이 아니라 광야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목이 타들어가며, 생명조차 위태로운 곳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 주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단순한 지식의 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앎’은 책 속의 정보나 설교를 통해 들은 지식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 2025. 11. 11. 이전 1 ··· 112 113 114 115 116 117 118 ··· 38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