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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 부르심으로 시작된 교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4.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린도전서 1:1~3)

교회는 언제나 문제 속에 존재해 왔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는 초대교회의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공동체였습니다. 분열과 파벌, 음행, 다툼, 세속적 재판, 결혼 문제, 우상 제물, 은사 경쟁, 부활 논쟁까지 교회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이 공동체를 향해 단호하게 말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이 선언은 고린도 교회의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복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교회는 문제 없음으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부르심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
잘됨’이 아니라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며 말씀을 가르쳤고, 그곳에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떠난 이후 들려온 소식은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웠습니다. 교회는 성장했지만, 복음 안에서 성숙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교회의 문제를 ‘
해결해야 할 행정적 과제’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는 교회를 안정시키는 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하나입니다. 이들이 복음 안에 있는가, 아니면 복음을 넘어섰는가 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는 문제 해결 매뉴얼이 아니라, 십자가를 다시 보게 하는 편지입니다.

사도와 성도, 모두 부르심으로 존재합니다. 바울은 편지의 첫머리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이렇게 말합니다. “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이어 성도들에 대해서도 같은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사도와 성도의 차이는 역할이지, 출발점이 아닙니다. 둘 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결단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이 모인 자리,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이 없이는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발성이 아니라, 성령으로만 가능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
가짜 성도’ 때문인가? 우리는 종종 교회의 문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싶어 합니다. “저 사람은 진짜가 아니다.” “믿음이 없어서 문제를 일으킨다.” “가라지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여전히 죄의 속성 안에 살아갑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도 세상이 다시 악해진 것처럼, 은혜를 입은 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차이는 죄의 유무가 아닙니다. 차이는 복음을 듣고 깨닫는가, 아니면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가에 있습니다. 복음은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만이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죄를 이겨내는 능력이 생겼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
잘난 성도’로 만들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복음을 이렇게 오해합니다. “복음을 알면 점점 죄를 이기게 된다.” “믿음이 자라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개선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폭로할 뿐입니다. 내가 믿음을 책임질 수 없었고, 은혜 없이는 단 한 발짝도 갈 수 없는 존재였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명해집니다. “이런 나를 위해 그분이 오셨다.” 이 고백이 복음인 것입니다.

바른 교회를 만들려는 열심이 복음을 가립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쓴 목적은 ‘
모범 교회 만들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른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심이 얼마나 쉽게 십자가를 밀어내는지를 드러냅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는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주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할지어다.” 문제의 해결은 사람을 걸러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든 자가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인사말이 아닙니다.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말은 형식적인 인사가 아닙니다. 은혜란, 멸망받아 마땅한 내가 부르심으로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평강이란, 그 신분 안에서 더 이상 비교할 것도, 증명할 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 은혜와 평강이 충만한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완성된 교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서 끊임없이 부인되기 위해 모입니다. “
나는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 고백 위에 은혜가 다시 빛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나의 교회도, 너의 교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부르신 것을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만듭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늘 복음을 넘어서는 자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다시 복음 앞으로 불려 나오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오늘도 문제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자, 성도 되게 하신 그 은혜와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