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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더불어 사는 삶 - 보이지 않는 곳에 새긴 사랑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21.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작은 보트 한 척이 있었고, 그 보트는 가족의 여름을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따뜻한 계절이면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호수로 나갔습니다. 물살을 가르는 노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낚싯대 끝에 매달린 기대감, 그 모든 것이 그 작은 배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호수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그는 보트를 뭍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런데 배 밑바닥을 살피던 그의 눈에 작은 구멍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아주 작은 구멍이었습니다. "
봄이 되면 고쳐야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페인트공에게 겨우내 배에 새 페인트만 칠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구멍은 그의 마음속에서도, 페인트공에게 전한 말속에서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보트를 타고 싶어 졸랐고, 아버지는 그 구멍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무심코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호수로 나간 지 두 시간이 흘렀을 때, 그는 소스라치듯 그 구멍을 기억해 냈습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심장이 내려앉는 심정으로 호숫가로 달려간 그의 눈앞에, 아이들을 태운 보트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뭍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배 밑바닥을 살폈을 때, 구멍은 이미 메워져 있었습니다. 페인트공이 겨우내 페인트를 칠하다가 그 구멍을 발견하고, 누구의 부탁도 받지 않은 채 조용히 고쳐놓았던 것입니다. 감사의 선물을 들고 찾아간 그에게 페인트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페인트칠 값은 이미 받았습니다. 이 선물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습니다. "부탁도 하지 않은 일을 해주신 덕분에, 제 아이들이 살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개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두가 지켜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시간입니다. 아버지가 보트를 타고 호수로 나가는 여름날은 모두가 지켜보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페인트공이 낡은 붓을 들고 홀로 배 밑바닥에 엎드려 구멍을 메우던 겨울의 헛간 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감독하는 사람도, 칭찬해 줄 사람도, 심지어 그 일을 알아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아무도 없던 시간이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로새서 3:23~24). 페인트공은 자신이 어떤 부탁도 받지 않은 일을 왜 했을까요? 그는 아마도 자신이 맡은 일을 그저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런 성실함이 결코 헛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사람들이 보는 주일 예배당 안에서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월요일의 사무실 책상 앞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부엌 싱크대 앞에서, 아무도 박수쳐주지 않는 병상 곁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코리 텐 붐의 아버지는 네덜란드의 작은 시계방을 운영하며 유대인들을 숨겨주었습니다. 그 일로 온 가족이 체포되었고, 아버지와 언니는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코리 텐 붐에게 묻습니다. "
그렇게 큰 위험을 감수하며 유대인을 숨겨준 결단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회고록에서,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내린 영웅적 결단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평생 동안 정직하게 시계를 고치고, 손님에게 정직한 값을 받고, 이웃을 정직하게 대해온 작은 습관들이 쌓인 결과였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 용기는, 아무도 보지 않던 수많은 평범한 날들이 미리 새겨놓은 것이었습니다. 페인트공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가 그 구멍을 메운 것은 그날 갑자기 생긴 선한 마음이 아니라, 평생 자신의 일을 정직하게 감당해 온 습관이 낳은 열매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눈에 보이는 헌신으로만 측정하려 합니다. 얼마나 많이 봉사했는가, 얼마나 큰 헌금을 드렸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 앞에서 간증했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신앙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주님은 큰 일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지극히 작은 일을 기억하십니다.

지금 당신의 삶 속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메워야 할 구멍이 있을지 모릅니다. 부탁받지 않았지만 옆자리 동료의 짐을 조금 덜어주는 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자녀에게 인내로 답해주는 순간, 대가를 바라지 않고 홀로 드리는 기도, 그것은 작아 보이지만, 훗날 누군가의 생명을 건지는 구멍 메우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페인트공은 자신이 메운 구멍이 훗날 두 아이의 생명을 구할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한 채로도 신실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입니다. 결과를 다 보지 못해도, 지금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붓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붓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하게 움직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조용한 순종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