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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우리는 그의 집이라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6.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브리서 3:1~6)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 부릅니다. 이 말은 단순히 “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따뜻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로 창세 전부터 계획된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함께”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따로따로 구원받은 개인들이 아니라, 예수를 머리로 한 한 몸, 곧 교회로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구원은 어느 날 우연히 주어진 선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아셨고, 복중에 짓기 전부터 부르셨던 예레미야처럼 우리도 그 영원한 시간 안에서 선택된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했습니다. 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예표하는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집을 맡은 아들이십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였습니다. 인간의 행위, 의로움,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려 했던 사람들의 대표였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인간을 살릴 수 없었습니다. 율법은 오히려 우리 안의 죄를 드러내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
’이 아닌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종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이루는 아들이십니다. 그분 안에서만 참된 신실함과 영원한 집이 세워집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그분의 피로 씻긴 성전이 되며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 우리는 수평적 시간 속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그 위에서 수직적인 묵시의 세계로 일하십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와 서울에서 떠오르는 해는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 있어도, 그 빛은 같은 태양에서 나옵니다. 그처럼 십자가는 묵시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 사건은 2,000년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모든 믿는 자에게 동시에 비추는 구원의 태양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흘러가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품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 옆에는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둘 다 죄인이었고, 둘 다 죽을 자였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고백했고, 다른 사람은 끝까지 조롱했습니다. 둘 다 같은 흙으로 빚어진 인생이지만, 십자가 앞에서 믿음으로 긍휼을 구한 자와 자신의 의를 붙든 자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선행이나 업적이 아닙니다. “나는 주의 긍휼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자입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마음, 바로 그것이 구원입니다. 십자가 위의 강도는 선행 하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인정했고,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하나님이 그에게 거하실 집의 문을 열었습니다.

참된 변화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변했는데, 당신은 왜 아직도 그러냐?” 그러나 그것은 참된 변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변화는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스스로 낮아지고, 긍휼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깊이 깨닫는 변화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내가 무엇을 해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낮출 때,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에 긍휼의 공간을 여십니다. 그 공간에 성령이 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묵시 가운데 부어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이천 년 전의 십자가는 지금 우리의 심장 속에서도 여전히 피 흘리고 있습니다. 그 피의 능력은 예루살렘에도, 서울에도, 지금 이 자리의 우리 안에도 똑같이 역사합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십자가에 붙들린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날, 그 십자가에 매달린 모든 이들이 함께 들려올려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살아가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
우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분”이라 부릅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사도이자,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 안에 있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완전하게 그분 안에서 완성되었으며, 그 집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나는 변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주의 긍휼과 은혜가 나를 변화시킵니다. 주의 집이신 나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우리가 이 고백을 붙들고 살 때,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공동체 안에서 참된 성전으로 세워지십니다. 우리는 그의 집입니다. 그분이 거하시는 살아 있는 성전입니다. 그 은혜를 끝까지 붙들며, 소망의 확신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것이 히브리서의 복음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