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2587 순교자의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는 광야의 여정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6:9~11)우리는 흔히 ‘순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 옛날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던 성도들이나 복음을 전하다가 참혹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마음 한켠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야. 적어도 내 삶과는 거리가 있어.” 그러나.. 2026. 1. 23.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연습 - 소멸이 아닌 옮겨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죽음은 늘 갑작스럽고, 잔인하며, 모든 것을 끝내는 사건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 멀었어”, “지금은 바빠”라는 말로 죽음을 삶의 밖으로 밀어냅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의 외면과 상관없이,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 교수는 죽음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입니다.그는 죽음을 ‘댐이 무너지는 순간’에 비유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계에 다다른 구조물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육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 사용되어 온 몸이라는 그릇이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릅니다.그러나 중요한.. 2026. 1. 22.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옷을 벗는 사건이다 “우리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린도후서 5:1)우리는 흔히 죽음을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숨이 멎고, 심장이 멈추고, 더 이상 말도 움직임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죽음은 늘 두려움의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만일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전환이라면 어떨까요? 죽음을 그렇게 바라보십시오. 죽음은 생명의 종료가 아니라, 몸이라는 옷을 벗는 사건인 것입니다.우리는 태어날 때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이 세상에 옵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옷을 입고 벗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옷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복장이 달라집니다. 육체도 이와 비슷합니다. 영혼이 이.. 2026. 1. 22. 디도의 일기(08) -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나다 빌립보는 특별한 도시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번듯하고 질서정연했습니다. 로마의 법, 로마의 언어, 로마의 군기와 자부심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자신을 “로마 시민”이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그 정체성은 일종의 자랑이자 방패였습니다.그러나 그런 도시일수록, 하나님을 찾는 자의 자리는 보이지 않게 밀려나 있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회당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 그는 말씀의 토대가 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습니다. 유대인 열 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단순한 행정적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도시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체계 위에 세워진 곳인가를 보여 주는 징표였습니.. 2026. 1. 22. 이전 1 ··· 174 175 176 177 178 179 180 ··· 64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