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다섯 시, 병원 응급실 야간 근무를 마친 간호사 민경 씨는 탈의실 거울 앞에서 잠시 멈춰 섰습니다. 열두 시간 동안 환자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했던 그녀였지만, 정작 동료가 실수를 지적했을 때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원래 예민한 사람이라 어쩔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녀는 이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되뇔수록 마음 한구석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 도피라는 걸, 그녀 자신이 가장 먼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이렇게 언제나 불편함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대개 열 가지를 잘해낸 성취보다, 하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마음은 본능적으로 도망칠 곳을 찾습니다. 그 도피처의 이름이 바로 합리화입니다.
합리화는 아주 그럴듯한 얼굴을 하고 찾아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이는 "나는 혼자가 더 행복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게으름을 반복하는 이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며 변화의 가능성 자체를 닫아버립니다. 이 말들은 당장의 통증을 마취시켜주지만, 동시에 성장의 문도 함께 잠가버립니다. 마치 상처 난 다리를 진통제로 무감각하게 만든 채 계속 걷는 것과 같아서, 통증은 잠시 잊혀지지만 상처는 곪아갑니다.
반면 어느 날 민경 씨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 "아까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 한마디는 대단한 결심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은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타인이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부족함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자기반성의 출발점입니다. 남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나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합리화라는 갑옷을 벗어던지고 자신에게 솔직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솔직함이 자기비하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100% 만족스럽지 않다"는 인정과 "그래도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자각은 언제나 함께 와야 합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되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고, 그 부족함을 넘어서려는 걸음을 다시 내딛는 것, 마치 서투르게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나는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지 않고, 무릎의 상처를 인정하면서도 다시 페달을 밟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당신은 그 페달을 밟았습니다.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한 것, 어제의 실수를 곱씹으며 오늘은 다르게 행동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그 작은 결심 하나하나가 이미 더 나은 자신을 향한 진보입니다. 이런 아침이 하루하루 쌓일 때,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만큼 더 자라납니다.
그러니 오늘 아침, 당신의 그 걸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 그리고 그 부족함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끈기, 이 두 가지를 매일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어떤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더 깊고 의미 있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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