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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유다서

귀를 여는 사람이 마음을 얻는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25.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것이 세상의 소통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소통의 도구는 넘쳐나는데,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가족의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도구는 발전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멀어졌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소통에 실패하는 걸까요?

직장인 민준은 요즘 아내와의 대화가 두렵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아이 학교 문제, 층간소음 이웃 문제, 시어머니 전화 이야기…. 민준은 듣다가 슬그머니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그냥 무시해." "학교에 전화해봐." "다음엔 이렇게 해." 그런데 아내의 표정은 점점 굳어집니다. 결국 아내는 "당신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잖아"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민준은 어리둥절합니다. '나는 분명히 들었는데. 해결책까지 줬는데. 뭐가 문제야?'

문제는 그가 '
듣기'를 '해결하기'와 혼동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원한 것은 정보 처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소통의 본질은 정보 교환이 아니라 공감입니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감정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해결사가 되려 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 곁에 앉아주는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실제 언어, 즉 말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7%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3%는 목소리 톤, 표정, 눈빛, 몸짓, 자세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팔짱을 끼고 시선을 딴 데 두고 있으면 상대방은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이 서툴러도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바라봐주면 상대방은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오프라 윈프리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녀의 토크쇼를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한 시간 방송 동안 그녀가 직접 말하는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50분은 상대방이 말하도록 내어줍니다. 그 시간 동안 오프라는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짧은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게스트를 끌어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신뢰하고 가장 내밀한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들을 줄 알아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소통이 막히는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대화의 자리를 '
훈계의 자리'로 만들어버립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앉혀놓고 말을 시작하는 순간, 아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방어막이 쳐집니다. 무슨 말이 나올지 알기 때문입니다. '공부해라. 스마트폰 그만 봐라. 너 때는 이게 어디냐.' 아들은 몸은 거기 있지만 마음은 이미 방을 나간 지 오래입니다. 권위를 가지고 다가가면 상대방은 질식합니다.

대화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높이에서 서로를 향해 흐르는 것입니다. 자녀와 진짜 대화를 원한다면 먼저 '
부모'라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너 요즘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묻고, 그 대답을 판단 없이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장인데", "내가 더 많이 벌어오는데"라는 의식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남편 앞에서 아내는 마음을 열 수 없습니다. 권위는 복종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친밀함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소통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신뢰의 논리로 작동합니다.

'
123 법칙'이라는 소통의 원칙이 있습니다. '1번 말하고, 2번 들어주고, 3번 고개를 끄덕여라.'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다음에 내가 할 말'을 준비합니다. 그것은 듣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입니다. 진짜 경청은 상대방의 말이 내 안에 들어와 울리도록 두는 것입니다. 반박할 말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먼저 헤아리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심리치료의 효과 중 상당 부분도 치료사가 특별한 기술을 써서가 아니라, 단지 판단 없이 들어주었기 때문에 생깁니다. 경청 자체가 치유이고, 경청 자체가 사랑의 표현입니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 저녁, 배우자나 부모님이나 친구가 말을 걸어올 때 딱 한 가지만 해보십시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을 마주치고, "
그랬구나"라고 말해보십시오. 해결책을 내놓지 않아도 됩니다. 판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그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소통은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이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귀를 여는 사람, 마음을 여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귀가 열리면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관계가 열립니다. 그 작은 문이 열리는 것에서 진짜 소통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