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조금 더 정리정돈을 잘해줬으면 했고, 아내는 남편이 조금 더 자주 "사랑해"라고 말해줬으면 했습니다. 둘 다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히다 보니, 어느 날 사소한 말다툼이 폭발처럼 번졌습니다. 알고 보면 그 싸움의 뿌리는 따로 있었습니다. "왜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지 않는 거야?" 하는 마음, 즉 욕심이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참으로 묘한 괴물입니다. 먹이를 줄수록 더 크게 자랍니다. 좋은 집에 이사하면 더 좋은 집이 눈에 들어오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어느새 그 사람의 부족한 점이 먼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배움이 많아도, 가진 것이 넉넉해도, 경험이 풍부해도 욕심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무너집니다.
오래된 유머 하나가 이 진실을 날카롭게 찌릅니다. 결혼 35주년을 맞은 노부부 앞에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평생 가난해서 가보지 못한 세계 여행을 소원했고, 요정은 항공권과 숙박권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 차례입니다. 예순의 노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나보다 서른 살 젊은 여자와 살고 싶소." 요정이 지팡이를 흔들자,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순간 아흔 살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욕심의 계산서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청구됩니다.
물론 욕심을 무조건 악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적당한 불만족은 성장의 씨앗이 됩니다. "조금 더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 "조금 더 따뜻한 아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부부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룩한 욕심입니다. 문제는 그 욕심이 상대를 향한 요구와 불만으로 굳어질 때입니다. 그때부터 욕심은 관계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결혼 2, 3년쯤 지났을 무렵, 어느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워 남편이 아내에게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여보, 내가 고쳐줬으면 하는 거 있으면 두세 가지만 말해줘." 아내가 처음엔 손을 저었습니다. "난 지금 당신으로 충분해." 남편이 다시 권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서로를 위해서. 너무 많이 말하면 부담스러우니까 두세 가지만."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그것을 고치려 노력했습니다. 다음엔 또 새로운 바람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둘 사이에는 어느새 큰 불만이 없어져 있었습니다. 욕심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대신, 조금씩 나누고 조금씩 채워가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에게 완전히 만족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만족스럽게 여기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만하면 됐어." "나한테 당신은 과분한 사람이야." 이 한마디는 상대를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꿉니다. 잔소리가 늘어나는 이유는 대개 상대방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내 욕심의 그릇이 너무 커서입니다.
욕심의 그릇을 조금만 기울여 쏟아내 보십시오. 그러면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 곁에 있어주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내 밥그릇을 챙겨주는 손길, 지친 날 그냥 옆에 앉아주는 온기, 만족은 더 좋은 조건이 갖춰질 때 찾아오는 감정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이 사람과 함께 있음을 충분하다고 받아들이기로 한 결단에서 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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