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서울대학교 나민애 교수는 바로 이 질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그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정의해 준 ‘나’의 모습 속에서 오히려 진짜 나를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사랑으로 “너는 내 딸이니 밥이나 먹어라” 하셨고, 아버지는 시인으로서 “나는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며 자신을 찾는 길로 떠나셨습니다. 선생님은 “너는 학생이니 공부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정의는 나민애라는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 불과했습니다. 딸, 학생, 직장인, 교수라는 이름은 내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것들이었습니다. 세상은 “너는 대체 가능한 사람”이라 말했지만, 그 말 속에서 교수님은 깊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왜 여기 사는가?”,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답을 찾게 해 준 것이 바로 ‘독서’였습니다. 책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거울이자 지도였습니다. 사전에는 ‘인간’의 정의는 있지만, ‘나민애’의 정의는 없습니다. 그 정의는 내가 써 내려가야 하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도구가 바로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서점에서, 혹은 도서관의 어느 구석에서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제목이 이상하게 끌려서, 혹은 우연히 손에 잡히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운명적인 만남’을 합니다. 그 만남 속에서 우리는 “당신은 내 마음에 꼭 맞느니”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정지용 시인의 한 구절처럼, 어떤 문장은 내 마음의 깊은 곳에 정확히 닿습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 이것이 내가 찾던 나의 언어구나.”
책은 인생의 지도와 같습니다. 게임 속 퀘스트처럼, 한 구절이 내 마음에 불을 켜주면, 그 주변의 ‘지도’가 열립니다. 책 한 권은 하나의 작은 지도입니다. 그 작은 지도를 따라 한 걸음 나아가면, 또 다른 책 속에서 새로운 지도가 열리고,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헤르만 헤세의 한 문장이 그랬습니다. “내 안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길을 따라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힘들었던가.” 이 문장을 읽으며, 나민애 교수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 위대한 작가도 나처럼 힘들어했구나.” 그 깨달음 하나로 마음은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헤세는 또 다른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안에는 수많은 너가 있어.” 나를 미워하는 나, 나를 사랑하는 나, 나를 채찍질하는 나… 그 다양한 ‘나’들이 모두 나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마음에는 이상한 평안이 찾아옵니다. 책은 그 평안을 찾아가는 길잡이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직접 걸어가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지도입니다.
교수님은 말합니다. 책이 영상보다 더 좋은 이유는,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작가의 말을 ‘내 목소리로’ 듣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상 속 이야기는 배우의 목소리로 들리지만, 책은 내 머릿속에서 나의 언어로 재생됩니다. 그래서 그 문장은 내 것이 되고, 내 마음속에 스며듭니다.
김초엽 작가의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어”라는 문장도, 책을 통해 읽으면 그것은 남의 말이 아니라 ‘나의 선언’이 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다짐의 언어이자, 나를 일으키는 자기의 목소리입니다.
나민애 교수는 일 년에 한 번,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36시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 시간은 그녀에게 최고의 여행이자, 최고의 충전입니다. 통닭 한 마리를 시켜 놓고, 서로 다른 세 권의 책인 소설, 에세이, 학술서를 읽습니다.
그 36시간 동안 그녀는 세 사람을 만나고, 세 곳의 세계를 여행합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파리의 골목을 걷고, 철학자의 서재에 앉고,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피부 관리실에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맑아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책은 그렇게 사람을 회복시키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갈 힘을 줍니다.
나민애 교수는 강연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독서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책만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재미있고 즐거워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친구 만나듯이, 가끔 안부 전화하듯이, 책을 편하게 만나세요.”
책은 인생의 길에서 마주치는 좋은 벗입니다. 그 벗은 내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주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불빛이 되어줍니다. 책 속의 한 구절, 한 문장은 결국 나의 인생을 새롭게 그려주는 하나의 점, 하나의 길이 됩니다.
독서는 단순히 글자를 읽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해 떠나는 가장 조용한 순례입니다. 세상이 나를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말할 때, 책은 나에게 속삭입니다. “너는 네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어.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너는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한 권의 문장, 그 한 구절이 당신 안의 지도를 밝혀줄 것입니다.그 지도를 따라 걸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만납니다.
“책은 내 인생의 지도이자, 나를 찾는 가장 조용한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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