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로마서 14:17)
로마서 14장 17절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단 한 문장으로 꿰뚫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먹는 문제’와 ‘지키는 날의 문제’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시장에 나오는 고기가 우상에게 먼저 바쳐졌다는 이유로, 그것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믿음이 강한 자는 아무거나 먹을 수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해 먹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싸움의 본질을 꿰뚫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단지 외형적 행위와 종교적 의식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를 세우려 합니다. 예배의 형식, 정해진 예배 순서, 어떤 날을 지키느냐 하는 문제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묶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 4:21~23) 하나님 나라는 장소와 형식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존재하는 실재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다면, 어디서든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건물과 순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바울이 말한 “의”는 단순히 도덕적 올바름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짜다크는 ‘관계의 충실함’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가 본래의 질서 안에서 완전하게 서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관계를 스스로 맺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함을 감당할 존재는 하나님 자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불의한 자요,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다”(사 64:6)고 이사야는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옷을 입히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시고, 그분의 의로 우리를 덮으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완벽히 순종하심으로 우리는 그 의를 ‘믿음으로 옷 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마음에는 참된 평강이 임합니다. 이 평강은 세상이 주는 안정이 아닙니다. 세상은 늘 비교와 경쟁, 인정욕구 속에서 불안을 낳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너를 보셨고, 너는 예수의 옷을 입은 자다.”
우리가 여전히 부족하고, 실패하고, 더러운 옷처럼 행동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옷 안에 있는 우리의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피로 덮인 예수를 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평강(Shalom) 입니다. 창조의 질서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은 인간의 성취나 자족감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변했다”는 자기 확신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앙”도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먹고 마시는 것’, 곧 인간 중심의 종교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희락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그분 없이는 살 수 없구나”를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고통 속에 피어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웃습니다. 세상의 어떤 인정도 필요 없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그 사실 하나로 인한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는 세대’의 현실이 이미 ‘이 세대’ 속으로 침투한 세계입니다. 우리는 그 묵시적 세계를 살고 있는 영원한 현재의 사람들입니다. 이 땅의 가치와 질서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법과 영광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먹는 것이 아니요, 마시는 것이 아니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에게만 주어진 하늘의 질서,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실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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