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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아가서 - 사랑을 찾고 있었지만 이미 사랑 안에 있었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5.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가 3:1~5)

아가서는 읽을수록 낯설게 느껴집니다. 분명 ‘
사랑의 노래’라 불리는데, 우리가 기대하는 사랑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길로 흘러갑니다. 설렘도, 감동적인 고백도, 서로를 향한 확신에 찬 약속도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가서를 읽다 보면 마음 한편이 자꾸 불편해집니다. “이게 정말 사랑 이야기 맞나?” 그 질문은 사실 아가서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향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아가서가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사랑과 다릅니다. 우리는 사랑을 ‘
느껴지는 것’, ‘확인되는 것’, ‘내 삶이 잘 풀리는 증거’로 생각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면 형편이 나아져야 하고, 마음이 평안해야 하며,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아가서는 그런 기대를 조용히 무너뜨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인은 밤에 침상에 누워 사랑하는 이를 찾습니다. “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이상합니다. 바로 앞 장에서는 사랑하는 자가 달려와 여인을 부르고, 함께 일어나자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제 막 사랑이 무르익을 것 같은 순간에, 여인은 갑자기 상실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구분을 해야 합니다. 아가서에 등장하는 왕의 사랑과 여인의 사랑은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왕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사랑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의심하고, 놓칩니다. 이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사랑은 완전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늘 불완전합니다.

여인은 침상에서 사랑하는 이를 찾고 있습니다. 이 침상은 이미 사랑이 시작된 자리입니다. 왕이 여인을 자신의 처소로 이끌었고, 여인은 그곳에 있습니다. 이것은 여인의 자격 때문이 아닙니다. 여인은 스스로 말했듯 볼품없는 존재입니다. 만일 자격을 따졌다면, 왕의 침상에 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인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의 사랑 안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찾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었으면서도, “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걸까?”라고 묻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를 원하고, 느껴지는 확신을 구합니다. 삶이 평탄하지 않으면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그 사랑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아닌 독생자를 내어주신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 없는, 완전한 증거인 것입니다.

여인은 밤에 사랑하는 이를 찾습니다. 밤이라는 표현은, 사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빛이 비치고 있는데도 여전히 빛을 기다리는 어둠처럼, 사랑 안에 있으면서도 사랑을 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침상에서 일어나 성 안을 헤맵니다. 거리와 큰 길에서 사랑을 찾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해야 사랑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바르게 살아야, 더 많이 헌신해야, 더 뜨겁게 기도해야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실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여인은 성을 순찰하는 자들에게 묻습니다. 이는 성전 중심의 신앙, 인간의 열심과 종교적 체계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인은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사랑을 만납니다. 사랑은 인간의 길 끝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이미 하나님이 열어두신 길, 곧 십자가의 자리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늘 실패합니다. 넘어지고, 의심하고, 잊어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우리를 놓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견고함입니다.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은, 더 애써서 사랑받아야 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미 왕의 처소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이유는, 사랑을 성취의 문제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아가서의 마지막 권면처럼, 사랑은 억지로 흔들어 깨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조급함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노루와 들사슴처럼 뛰는 자유, 사랑 안에서 쉬는 자유입니다.

사랑을 찾느라 바쁜 밤에서 깨어나, 이미 주어진 사랑 안에서 눈을 뜨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사랑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