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아가서 2:15~17)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초대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능력이나 열심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존재가 드러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의 관계 안에 머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늘 ‘여우’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가 말하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아 2:15)는 단순히 교회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우리의 내적 자세를 가리킵니다.
포도원은 인간의 수고가 아니라 사랑으로 피어난 자리입니다. 아가서에서 포도원은 단순한 ‘사역의 장소’나 ‘교회 조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피어나고 열매를 맺는 자리입니다. 성경은 포도원에 꽃이 피는 것을 ‘사랑하는 자의 주권과 은혜’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씨를 뿌리고 물을 줄 수는 있지만, 싹이 트고 꽃이 피게 하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에서 사람의 열심과 능력, 봉사와 수고를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포도원을 해치는 것입니다. 꽃은 하나님이 피우신 것이지, 우리의 공로나 노력으로 피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완성한 포도원에 자기 이름을 남기려는 순간, 여우는 이미 포도원을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여우는 사랑을 훼방하는 가장 교묘한 태도입니다. 아가서는 이 여우를 ‘작은 여우’라고 부릅니다. 왜 작은 여우일까요? 작다는 것은 ‘가볍게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대수롭지 않은 것 같고, 그냥 성격일 뿐이고, 습관일 뿐이고, 열심일 뿐이라고 여기게 합니다.
하지만 이 작은 여우가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사랑을 흐리게 하고, 은혜를 가리우고, 내 능력을 앞세우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죽은 자 됨’을 잊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이룬 관계를, 다시 ‘나의 열심’과 ‘나의 행함’으로 확인하고 싶어지면, 그 순간 여우는 포도원을 허물기 시작합니다.
작은 여우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인정하신 건 너의 충성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잘한 게 있으니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는 거야.” “열심히 해야 사랑받지.” “나 정도면 꽤 괜찮지 않아?” 이기심이나 악행처럼 보이지 않기에 더 위험합니다. 심지어 ‘신앙의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신령한 척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아가서 2장 16절은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사랑은 ‘서로에게 속했다’는 고백으로 완성됩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그대로 비추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요 14:20). 이것이 사랑의 처소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사랑 자체가 우리를 그 처소로 이끌어 들어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내가 얼마나 열매를 많이 맺었는가’로 확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을 오해한 것입니다. 열매는 사랑의 증거이지, 사랑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사랑을 근거로 하지 않는 모든 열심은 잠시 반짝할 뿐, 결국 허무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이를 분명히 말합니다. 믿음이 산을 옮길 만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구제와 헌신이 아무리 커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가서 1장 4절에서 여인은 왕의 방으로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들어갈 자격이 없었지만, 왕의 사랑이 그녀를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고백합니다.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포도주는 인간의 수고와 시간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어떤 즐거움보다 더 깊은 기쁨을 줍니다. 그런데 작은 여우는 이 사랑을 잊게 만들고, 다시 인간의 수고로 만든 포도주 곧 ‘나의 성취’를 즐거움의 근거로 삼게 만듭니다. 사랑이 아닌 성취의 즐거움으로 신앙을 대하는 순간, 우리는 포도원을 허는 여우가 되는 것입니다.
포도원을 허는 여우는 결국 ‘나 자신’입니다. 여우는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포도원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의, 자기 만족, 자기 열심, 자기 공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온전함을 이룰 수 없는 존재이며, 그 온전함을 대신 이루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할 때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사람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사랑의 처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깨달음이 올 때, 비로소 작은 여우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아가서 2장 17절에서 여인은 사랑하는 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해가 지기 전,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 돌아오라는 이 말은 사랑하는 분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성도의 삶은 결국 사랑을 노래하며 사랑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포도원을 지키는 것도, 여우를 잡는 것도 우리의 능력이 아닌 사랑에 붙잡힌 성령의 일입니다. 예수님의 처소는 부족함이 없는 온전함의 세계입니다. 그 처소로 들어간 사람은 자기 열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 전부임을 노래하게 됩니다.
작은 여우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은혜를 가리고 사랑을 흐리게 하는 그 작은 생각, 작은 교만, 작은 의지들이 바로 여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 안의 작은 여우를 보게 하시고, 사랑의 포도원을 지켜 주소서. 제가 열매로 사랑을 확인하려 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사랑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리고 그 사랑을 노래하십시오. 포도원을 피우시는 분도, 지키시는 분도, 열매 맺게 하시는 분도 오직 주님 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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