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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영적 직임을 발견하고 헌신하기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3. 13.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7)

어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평생 묻고 살다가 생을 마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틀림없이 아는 것입니다. 가슴 어딘가에서
"맞다, 이것이다"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앙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직임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는 이 일에 그다지 진지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되면 으레 어느 부서에 배치되고, 몇 가지 역할을 맡고, 그것을 충실히 감당하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물론 그 헌신이 소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교회가 부여한 역할과,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직임은 같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습니다.

민준은 중견 기업의 회계 담당자였습니다. 신앙을 가진 지 오래되었고, 주일이면 빠짐없이 교회에 나갔습니다. 구역장도 맡아 성실히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이상한 버릇 하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습니다. 직장 동료가 이혼 위기라는 말을 흘리면 퇴근 후 저녁을 함께 먹으며 몇 시간을 들어주었습니다. 상담 기술을 배운 적도 없고, 특별히 지혜로운 말을 해줄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저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사람들이 뭔가 가벼워진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직임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냥 성격이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끌림은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심어두신 신호였습니다. 어떤 일에 자꾸 시선이 가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며, 자신은 없지만 자꾸 그 방향으로 발걸음이 향한다면, 그것이 바로 직임의 첫 번째 언어입니다.

물론 끌림이 모두 직임은 아닙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누리는 명예나 권위에 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목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만들어내는 끌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치고 사라집니다. 반면 성령의 직임에서 오는 끌림은, 잘 안 될수록 오히려 더 하고 싶어지는 묘한 지속성이 있습니다.

직임의 두 번째 신호는 능력입니다. 민준에게는 상담 공부를 한 적이 없음에도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이상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 청년부 집사가 극심한 우울감으로 아무도 만나기 싫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민준에게는 전화를 했습니다. 한 시간쯤 통화가 끝났을 때 그 청년은
"이상하게 형이랑 얘기하면 숨이 쉬어진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직임의 능력입니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그리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본격적으로 그 일을 감당하게 될 때를 위한 예비 훈련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 일이 네 것이다"라고 건네는 확증입니다.

생활의 직임에는 그에 맞는 여건도 따릅니다.
'섬기는 일'이나 '나누어주는 일'을 감당할 사람에게는 물질의 풍성함이 허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를 영접한 이후 사업이 안정되고 삶이 윤택해졌다면, 그것이 신앙에 대한 보상으로만 주어진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부유함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직무를 위해 미리 준비된 재료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신의 축복으로만 쥐고 있다면,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방치하는 셈입니다.

'가르치는 직임'을 받은 사람에게는 지식이 풍성해집니다.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복잡한 것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의 설명을 듣고 싶어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직임의 언어입니다.

교회 안에는 눈에 보이는 직임이 있습니다. 설교하고, 치유하고, 예언하는 일들입니다. 이른바
'화려한 은사'들입니다. 이 일들은 증거가 분명해서 발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깊은 기도 없이는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신비한 것들을 경험하고, 기도가 즐거워집니다. 때로는 그 때문에 신비주의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직임이 요구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조용한 직임', 곧 생활의 직임입니다. 섬기는 일, 권면하는 일, 나누어주는 일, 지도하는 일, 자선을 베푸는 일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은 기적이나 이사(異事)로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자칫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직임들이 없다면 교회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아니, 세상도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자선을 베푸는 직임은 긍휼한 마음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불편하고, 자꾸 그런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며, 그들을 돕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인 사람, 그가 그 직임의 주인입니다. 누구나 한 번은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기쁨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그 마음을 빚어두셨기 때문입니다.

민준은 이후 상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직업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자꾸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잘 응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 일이 자신을 살아있게 한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 일을 할 때만 느껴지는 어떤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훗날 그는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직임의 가장 깊은 열매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맡기신 일을 감당할 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바로 그 일을 우리가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경험하신 마음을 실제로 느끼게 됩니다. 교육이나 논리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행함으로써만 닿을 수 있는 영역입니다.

에베소서 4장은 오중 사역의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직임을 발견하고, 그것에 온전히 헌신할 때, 그 길이 열립니다.

끌림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능력을 기억하십시오. 자신에게 풍성히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당신에게 건네는 직임의 언어입니다. 그 언어를 따라가는 삶,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로마서 1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