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령과 기름부음30

신령한 것을 알아야 하는 이유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이렇게 말하며 시작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이 말씀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방향을 잡아 주는 강한 권면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신령한 은사와 영적 세계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신령한 것을 알아야만 그리스도를 참되게 알고, 사랑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신령한 것을 모른다면 생명 없는 신앙이 됩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모르면 겸손해져야 하지만, 오히려 억지와 고집으로 스스로의 무지를 감추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령한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대개 그것을 부정하려고 합니다.그래.. 2025. 9. 4.
눈먼 마음을 고치시는 주님 - 내적 치유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성경을 펴시고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실 때, 그분의 사역의 방향과 목적이 선포되었습니다.“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이 구절은 단순히 육체적 치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눈이 멀어버리면 세상을 보지 못하듯, 우리의 내면이 깊은 상처로 가려지면 영적인 눈도 닫혀 마땅히 보아야 할 것들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된다”는 말씀으로 내적 치유의 본질을 드러내셨습니다.내적 치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치유라고 .. 2025. 9. 3.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들에게 들리는 성령의 언어 성령의 음성은 귀에 들리는 말이기보다, 마음에 그려지는 이미지이며, 영혼 속에 번져드는 포괄적 느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미지를 통해 감각하고 이해하도록 지어진 존재라고 증언합니다(창 1:27).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것은 종종 문자로 기록된 문장이 아니라, 영적인 상징과 직관의 이미지, 즉 비유와 환상의 형태로 전해졌습니다. 이 점은 성령의 음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말은 단순한 외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의사소통 방식, 곧 비유와 이미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 2025. 7. 22.
성령에 매인 자의 길 - 억눌림이 아니라 순종의 길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어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사도행전 20:22)바울은 자유로운 복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자였고,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웠으며, 유대 사회에서도 엘리트로 불리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자유인의 말이 아닙니다. 그는 “성령에 매였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묶인 자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성령께 붙들린 사람은 자신의 의도와 계획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앞에 스스로를 내어맡깁니다.여기서 말하는 ‘매임’은 단순한 억압이나 강제성이 아닙니다. 바울은 기꺼이 자원하여 매인 자가 된 것입니다. 이 매임은 기도의 자리에서, 깊은 영적 교제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내면의 순종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2025.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