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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은혜 앞에 선 인간의 참된 자리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8.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시편 51:1)

시편 51편 1절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는 유일한 자세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이 기도는 의로운 사람의 기도가 아닙니다. 성공한 신앙인의 고백도 아닙니다. 죄를 깨달은 한 인간이, 더 이상 자신을 변호할 말이 없을 때 하나님께 내뱉는 마지막 언어입니다.

복음 전도자이자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캐리의 고백은 이 말씀을 삶으로 증명합니다. 그는 수많은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인도의 문화를 존중하며 복음을 전했고, 오늘날 선교의 기초를 놓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장례식 설교를 위해 어떤 본문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게 대답합니다.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그는 자신의 업적을 언급하지 않았고, 헌신을 나열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불쌍하고 죄 많은 피조물”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묘비에는 이름과 업적 대신, 단 한 문장만 새기기를 원했습니다.
“더럽고 불쌍하고 무력한 벌레인 제가 주의 친절하신 팔에 안깁니다.” 이 고백은 겸손의 미덕을 보여 주는 차원을 넘어, 복음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언제나 은혜 하나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자신이 더 나아졌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하고, 말씀을 더 잘 알고, 섬김의 자리가 많아질수록 은근히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생긴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더 분명히 보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배와 같습니다. 빈 배는 물 위에 높이 떠서 멀리서도 눈에 띕니다. 그러나 무거운 짐을 실은 배는 오히려 물속으로 깊이 잠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낮아 보이지만, 그 배는 실제로 많은 것을 싣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로만
“나는 믿음이 있다”고 외치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기 쉽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은 점점 자신을 낮추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는 기도한다.’ ‘그래도 나는 말씀을 전한다.’ ‘그래도 나는 구제하고 봉사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가장 거룩한 행위조차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단지 악한 행동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동기와 태도, 자랑과 자기의 속에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어린 양의 피는 문설주에만 발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소와 제단, 속죄소에도 뿌려졌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상뿐 아니라, 그들의 예배와 종교 행위마저도 정결케 하셔야 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와 설교, 헌신과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거룩해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이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선한 일’에도 긍휼이 필요하다면, 우리의 죄와 패역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성도의 기도는 언제나 이렇게 끝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는 것이 복음의 놀라움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을 향해 이미 무진장한 긍휼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상한 뼈로 신음하는 다윗에게 “다시 기쁨을 회복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죄로 무너진 인간을 다시 세우시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인정할 때 하나님은 정죄보다 회복을 준비하십니다. 우리가 무력함을 고백할 때 하나님은 친절한 팔로 우리를 안으십니다. 그래서 은혜를 아는 성도의 삶은 두려움보다 감사가 많고, 자랑보다 탄식이 깊으며, 절망보다 소망이 큽니다.

결국 신앙의 마지막 고백은 이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긍휼은 모든 것입니다.” 이 고백 위에 서 있는 사람만이 참된 평안을 누리며, 끝까지 은혜로 살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