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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으로

이별이 아닌 연합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20.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분열된 두 ‘’를 마주했습니다. 하나는 예수 안에 있는 ‘’였고, 다른 하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 속에 덩그러니 놓여진 ‘’였습니다. 전자는 본래 하나였던 나, 창세 전부터 그분과 함께 묵시 안에 있었던 존재로서의 나이며, 후자는 그 하나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나온 듯 보이는, 그러나 여전히 그 하나의 본질을 잃지 않은 존재로서의 나였습니다. 이 간극을 이별이라 불러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건 이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별을 상실이라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은 단지 공간적 거리에 따라 끊어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사랑이란 그 자체로 주체성을 갖습니다. 떨어져 있어도 관계는 지속될 수 있고, 심지어 더욱 명확히 드러나기까지 합니다. 이별은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지 않습니다. 고통처럼 느껴지는 것들은 오히려 내 인식의 한계에서 옵니다. 그 감정은 참이 아닙니다. 참이 될 수 없는 감정은 필연적으로 거짓된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고통으로, 상실로, 외로움으로 감지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실제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거룩한 체험이 지나가고 나면, 그 자리에 남겨진 자는 마치 긴 이별 앞에 서 있는 듯한 감각에 휩싸입니다. 나는 그런 시간 속에서 통증을 느끼고, 아파하고, 불안해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감각 속에서도 내 안에서 자라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육의 감각과는 다른 차원에서 조용히 살아 움직이는 어떤 생명력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심기워진 사랑의 열심에서 자라난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은 한 가지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나는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연합되어 있습니다. 나는 고통을 느끼지만 동시에 생명을 느낍니다. 사랑과 이별, 생명과 연합이 교차하며 내 실존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이 감각은 단순히 흘러가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향한 어떤 거룩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 나를 두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랑을 배우고, 관계의 본질을 체험하고, 결국 다시 그분과의 연합을 기억해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종종 서로 손을 잡고 “너 좋아, 나도 좋아” 하는 수준에 머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사라질 유한한 체험에 불과합니다. 나는 그조차도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에 스스로를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깊은 열망의 자리에 또 다른 하나님의 손길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고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직면하게 하는 손길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이 과연 진짜인가? 고통은 진짜인가?

진짜 고통은 오직 하나, 진짜 사랑이 끊어지는 자리에서만 발생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외치셨던 그 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바로 그 외침이야말로, 참 사랑의 단절이 낳은 참 고통이었습니다. 영원부터 하나이셨던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잠시라도 단절되었을 때, 그때만이 진정한 이별이 있었고, 진정한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이 구원을 낳았습니다. 부활은 그 연합의 회복이며, 새 생명의 탄생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구원의 현장, 그 연합의 기념 속에 불림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부케가 쥐어졌습니다. 신부에게만 주어진 상징, 그것은 단순한 기대나 맹세가 아닌 신랑의 실존, 예수 그리스도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신랑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지만, 이건 이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관계를 유지시키는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신랑의 입맞춤이 주었던 구원의 감격을 현재로 다시 불러오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묵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역사적으로 2000년 전에 일어났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이전, 시간도 존재하지 않던 영원의 차원에서 이미 완성된 일이었습니다. 그 속에 나도 이미 있었습니다. 원래도 하나였던 나, 예수 안에서 존재했던 나, 지금도 그 안에 있는 나.

그렇기에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외로움과 불안은 전부가 아닙니다. 이건 훈련이고, 훈련 안에서 길어올려지는 사랑이며, 그렇게 자라나는 신뢰입니다. 함께 있을 땐 몰랐던 사랑을, 떨어짐의 자리에서 오히려 더 진하게 경험합니다. 역설 같지만,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 안에서 주체가 되었다가, 어느새 나를 감싸는 객체가 됩니다. 믿음이 나를 이끕니다. 고통을 뛰어넘게 하고, 외로움 속에서도 살아 있게 합니다. 그렇게 깨닫게 됩니다. 이건 이별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합 안에 있습니다.

사랑이 우리를 단 한 번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만이 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나로 하여금 오늘도 기꺼이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이며, 영원토록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건 결코 이별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