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한 요양원 앞에는 버스가 서지 않는 ‘가짜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합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르신들이 시설 밖으로 뛰쳐나와 길을 잃는 일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 어르신들은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도 집을 찾아가고 싶고,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유도 잊은 채 무작정 밖으로 나오지만, 막상 나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요양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선에도 없는 가짜 정류장을 만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머무는 동안, 직원들은 다가가 “버스가 조금 늦네요. 커피 한 잔 어떠세요?” 하고 부드럽게 권합니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시설로 돌아오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가짜 정류장이지만, 그곳은 노인들에게 잠시나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복음 밖에서는 이것이 따뜻한 배려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복음 안에서 바라보면 이 장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죄인의 영적 현실을 그대로 비춘 거울입니다.
치매를 앓는 노인이 ‘집으로 가고 싶다’는 본능적 갈망을 따라 가짜 정류장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습은,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우리가 이 세상을 집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참 닮아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영혼 깊은 곳에서 ‘집’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영원히 거할 참된 집,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그러나 죄는 이 갈망을 흐리게 만들고, 그 방향을 왜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의 편안함이 진짜 행복인 것처럼 오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영혼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떠나야 할 정류장에서 서성이는 자들” 우리가 진짜 돌아가야 할 집은 이 땅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땅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2) 이 말은 “육의 장막을 무너뜨려야 하늘 집이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집을 소유한 사람만이, 날마다 이 땅의 장막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매일의 ‘무너짐’인 내 계획이 꺾이고, 내가 붙들던 세상적 안정이 사라지고, 나의 옛사람이 드러나는 아픔, 이 모든 과정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너의 집은 땅에 있지 않다”고 알려주시는 은혜의 과정입니다. 그런 성도는 고난 중에도 이상한 소망의 탄식을 품고 삽니다. 육의 장막이 흔들릴수록, 말할 수 없이 깊은 곳에서 “하늘 집으로 덧입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6~18)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으로 도망가 다시 ‘가짜 정류장’에 앉아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치매 환자에게 직원이 다가와 부드럽게 말하듯, 주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너의 집은 여기 아니다. 돌아가자.” 그 부르심이 성도에게는 때때로 고난처럼 느껴집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 같지 않고, 세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우리를 참된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아버지의 손길입니다.
신앙은 ‘충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신앙을 잘못 이해합니다.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다시 충전해야지.” “기도원에 가면 새 힘이 생길 거야.” “QT로 영적 배터리를 채워야 해.”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신앙은 충전식 신앙이 아닙니다. 영적 배터리를 채워서 열심히 달리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고, 내가 그 신앙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내가 주님을 붙드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들고 사는 삶입니다. 부활절에 한 번, 성탄절에 한 번 찾아뵙는 ‘명절 하나님’이 아니라 365일, 나의 삶 전체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 없이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 “얼마나 열심을 내면 될까요?” “얼마를 바치면 되나요?” 그러나 치매 환자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없듯,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아무것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창조에서도, 구원에서도, 그리고 십자가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도움을 단 한 번도 필요로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홀로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우리는 실패했고, 제자들도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주님은 “너희의 실패 때문에 내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신앙은 화려한 업적이나, 눈에 보이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역사를 끝내실 날을 기다리며, 그 사이에 맡겨진 작은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삶입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 날마다 나 자신이 해체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혀지는 삶을 삽니다. 이것이 성도의 일상입니다. 특별하지 않아 보이지만, 하늘의 영광을 향한 진짜 여정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가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더 편해 보이고,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그곳에 오래 두지 않으십니다. 말씀으로, 고난으로,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 집은 여기가 아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하늘의 집을 준비해두었다. 나와 함께 가자.”
그리고 성도는 이 부르심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내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골 3:3) “주님, 나의 가짜 정류장을 무너뜨리소서.” “하늘의 집을 사모하게 하소서.”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가짜 정류장을 지나 참된 집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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