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나님나라

영원 전 언약(창세전 언약)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언약을 말할 때 노아 언약부터 언급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영원 전, 곧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 안에서 맺어진 언약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시간 속에서 처음 인식하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에도 “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그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라고 증거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이 사건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지만, 그 사건 자체는 영원 전에 이미 언약된 내용이 역사 속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살피려는 이유는, 오늘의 시대가 인간의 주체성이 극도로 부풀려진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후 “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인간을 절대화하는 사상이 지배했고, 심지어 교회조차 인간의 능력과 업적을 하나님의 영광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인데도 사람들은 눈에 보암직한 것들과 인간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결과들을 영광이라 말합니다. 누구나 “영원”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그 영원은 대개 죽음을 넘어서도 지속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일 뿐입니다. 고대 문명의 거대한 무덤들조차 사후 세계를 소유하려는 인간의 소망이 낳은 산물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원 사상은 모두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후예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죄성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오직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만 참된 영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디도서 1장 1~3절은 이 영원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세우신 목적은 택하신 자들에게 믿음,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 영생의 소망을 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영생은 “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 증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실제로 구하고 원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믿음,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 영생의 소망을 구했는가? 혹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더 지위, 부, 성공, 영광을 주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언약의 내용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은 우리의 세상적 번영이 아니라 영생과 진리의 지식입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는 이런 것을 전혀 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런 소망을 품고 진리를 믿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
자기 때에” 그 약속을 전도로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전도는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이라 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9~10에서도 이 부르심을 다시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신 것은 “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만일 행위대로 하신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자가 없습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했던 바울조차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던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르심은 전적으로 영원 전 은혜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죽음을 폐하고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는 복음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복음이란 결코 썩어지고 사라질 것들을 얻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은 생명이며, 썩지 아니할 실체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공·부·명예를 복음의 결과처럼 말하는 것은 영원 전 언약을 정반대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원 전에 누구와 누구가 언약하신 것입니까? 바로 성부와 성자의 언약, 신학적으로 말하는 구속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신비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의 모든 시행은 예수님 혼자 감당하셔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인 성육신, 순종, 십자가, 부활, 승천은 모두 아버지와 맺어진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89편은 하나님의 “
인자”와 “성실”을 찬양하며, 다윗 언약을 이루시는 성실하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성실이란 곧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언약의 신실성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내용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장입니다. 예수님은 “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다시 들어가게 해달라고 구하십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예수님은 혼자 그 영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내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아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 이것이 곧 영원 전 언약의 목적입니다.

영원 전 언약은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위한 영광의 약속입니다. 영원 전 언약은 인간의 욕망과 업적을 위한 약속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맺으신 언약 안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려는 영생, 진리의 지식, 영광의 참여에 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님의 순종과 사역으로 신실하게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 속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썩어질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 전에 약속된 영생의 소망,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