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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이 땅의 삶과 하늘 집을 사모하는 성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26.

독일의 한 요양원 앞에는 버스가 서지 않는 ‘가짜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합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르신들이 시설 밖으로 뛰쳐나와 길을 잃는 일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 어르신들은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도 집을 찾아가고 싶고,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유도 잊은 채 무작정 밖으로 나오지만, 막상 나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요양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선에도 없는 가짜 정류장을 만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머무는 동안, 직원들은 다가가 “버스가 조금 늦네요. 커피 한 잔 어떠세요?” 하고 부드럽게 권합니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시설로 돌아오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가짜 정류장이지만, 그곳은 노인들에게 잠시나마 ‘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복음 밖에서는 이것이 따뜻한 배려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복음 안에서 바라보면 이 장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죄인의 영적 현실을 그대로 비춘 거울입니다.

치매를 앓는 노인이 ‘
집으로 가고 싶다’는 본능적 갈망을 따라 가짜 정류장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습은,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우리가 이 세상을 집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참 닮아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영혼 깊은 곳에서 ‘집’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영원히 거할 참된 집,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그러나 죄는 이 갈망을 흐리게 만들고, 그 방향을 왜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의 편안함이 진짜 행복인 것처럼 오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영혼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
우리는 떠나야 할 정류장에서 서성이는 자들” 우리가 진짜 돌아가야 할 집은 이 땅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땅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2) 이 말은 “육의 장막을 무너뜨려야 하늘 집이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집을 소유한 사람만이, 날마다 이 땅의 장막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는 말입니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매일의 ‘
무너짐’인 내 계획이 꺾이고, 내가 붙들던 세상적 안정이 사라지고, 나의 옛사람이 드러나는 아픔, 이 모든 과정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너의 집은 땅에 있지 않다”고 알려주시는 은혜의 과정입니다. 그런 성도는 고난 중에도 이상한 소망의 탄식을 품고 삽니다. 육의 장막이 흔들릴수록, 말할 수 없이 깊은 곳에서 “하늘 집으로 덧입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6~18)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으로 도망가 다시 ‘가짜 정류장’에 앉아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치매 환자에게 직원이 다가와 부드럽게 말하듯, 주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
버스는 오지 않는다. 너의 집은 여기 아니다. 돌아가자.” 그 부르심이 성도에게는 때때로 고난처럼 느껴집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 같지 않고, 세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우리를 참된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아버지의 손길입니다.

신앙은 ‘
충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신앙을 잘못 이해합니다.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다시 충전해야지.” “기도원에 가면 새 힘이 생길 거야.” “QT로 영적 배터리를 채워야 해.”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신앙은 충전식 신앙이 아닙니다. 영적 배터리를 채워서 열심히 달리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고, 내가 그 신앙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내가 주님을 붙드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들고 사는 삶입니다. 부활절에 한 번, 성탄절에 한 번 찾아뵙는 ‘
명절 하나님’이 아니라 365일, 나의 삶 전체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 없이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 “얼마나 열심을 내면 될까요?” “얼마를 바치면 되나요?” 그러나 치매 환자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없듯,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아무것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창조에서도, 구원에서도, 그리고 십자가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도움을 단 한 번도 필요로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홀로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우리는 실패했고, 제자들도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주님은 “너희의 실패 때문에 내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신앙은 화려한 업적이나, 눈에 보이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역사를 끝내실 날을 기다리며, 그 사이에 맡겨진 작은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삶입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 날마다 나 자신이 해체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혀지는 삶을 삽니다. 이것이 성도의 일상입니다. 특별하지 않아 보이지만, 하늘의 영광을 향한 진짜 여정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
가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더 편해 보이고,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그곳에 오래 두지 않으십니다. 말씀으로, 고난으로,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 집은 여기가 아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하늘의 집을 준비해두었다. 나와 함께 가자.”

그리고 성도는 이 부르심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내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골 3:3) “주님, 나의 가짜 정류장을 무너뜨리소서.” “하늘의 집을 사모하게 하소서.”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가짜 정류장을 지나 참된 집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