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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1531

예수 그리스도와 창조의 뜻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은 성경의 두 번째 창조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장이 물리적 세계의 창조를 말한다면, 요한복음 1장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창조를 선포합니다. 그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곧 하나님이셨고, 그 하나님께서 말씀의 형태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 전에 이미 존재했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셨습니다.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육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단순한 한 사람의 출현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자신의 뜻을 보이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은 그 뜻을 살고, 전하며, 성취하는 삶을 사셨습니다.요한은 이어서 말합니다... 2025. 6. 14.
베노니와 베냐민, 그리고 '예수지옥 김밥천국'의 신앙 "그들이 베델을 떠나 에브랏에 아직 채 이르기 전에, 라헬이 몸을 풀게 되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하였다. 아이를 낳느라고 산고에 시달리는데, 산파가 라헬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셔요. 또 아들을 낳으셨어요." 그러나 산모는 숨을 거두고 있었다. 산모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하였다. '내 슬픔의 아들' '오른손의 아들' 또는 '남쪽의 아들'. 라헬이 죽으니, 사람들은 그를 에브랏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다가 묻었다. 야곱이 라헬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웠는데, 오늘날까지도 이 묘비가 라헬의 무덤을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 35:16~20)라헬은 눈부시게 사랑받던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 2025. 6. 14.
부득불,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예수를 전해야 하나요?" "왜 그렇게 눈물로 외쳐야 하나요?" 그러나 성경을 들여다보면, 결코 자발적인 열심이나 인간적인 열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직 '부득불'이라는 단어로만 표현될 수 있는 사명자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예레미야가 그렇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않겠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였습니다. 수염을 뽑히고, 뺨을 맞고, 조롱받고, 외면당했습니다. 그리하여 차라리 입을 다물고 살고 싶다고 결심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뼛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되어 도무지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또다시, 찢기면서도, 울면서도, “도대체 왜 나만 갖고 그러십니.. 2025. 6. 14.
말과 마음 사이의 영적 경계선 세상은 언제부턴가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가득해졌습니다. 머릿속 필터가 작동하지 않거나, 아예 없는 듯 보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이 말보다 느리고, 어떤 사람은 마음이 말보다 무겁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말이 빠르고, 마음보다 입이 가볍습니다.그들은 떠오르는 대로 내뱉습니다. 그것이 진심인지, 사실인지, 혹은 누군가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할 뿐입니다. 아니, 소리칠 뿐입니다. 그들의 언어는 마치 적나라한 가십의 사체처럼 썩은 냄새를 풍기며 퍼져 나가고, 듣는 이를 병들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말들에 굶주린 사람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 틈에서 말은 점점 진실로 둔갑합니다. 반복되면 믿음이 되고, 동의가 모이면 ‘공동의 판단’.. 2025.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