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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2107

아담에서 바벨까지, 그리고 아브라함으로 우리는 지금도 바벨탑을 짓고 있습니다. 그 탑의 이름이 ‘자기계발’일 수도 있고, ‘경력’, ‘명예’, ‘교회 성장’, ‘영적 성공’일 수도 있습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내면의 반역입니다.바벨의 역사는 에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그 한 입의 행위가 인류의 모든 ‘탑’의 시초였습니다. 그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피조물이,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는 순간 모든 질서는 무너졌습니다. 선악과는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 없는 정의’를 선택한 인간의 선언문이었습니다.가인은 동생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곧.. 2025. 10. 20.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는 마음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네 마음이 있는 그 곳에 네 보물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1)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돈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을 텐데.” “조금만 더 여유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누군가 큰돈을 건넨다면,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거부감이 올라옵니다. ‘아니, 받을 수 없습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일도 안 했는데 이런 돈을 받으면 죄짓는 것 같아요.’참 이상한 일입니다. 입으로는 돈을 원하지만, 마음은 돈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버릇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버릇은 대개 가난한 마음에서 온 편견입니다.‘나는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 ‘돈은 힘든 노력 끝에 얻는 것이다.’ ‘돈을 많이 가지면 교만해진다.’ 이런 생각.. 2025. 10. 20.
부러진 손가락을 보여주지 마라 우리 삶에는 누구에게나 ‘부러진 손가락’ 하나쯤은 있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에는 다친 자리 하나쯤, 누구에게도 쉽게 보여주기 어려운 상처가 있습니다. 그것이 실패의 기억이든, 관계의 아픔이든, 혹은 스스로에 대한 깊은 자책이든 말입니다.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상처를 무심코 드러내곤 합니다. 마치 그것을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사람들 앞에 툭 내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따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의적인 사람들은 그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한 번 드러난 상처는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공격의 빌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잠언 16:.. 2025. 10. 19.
아도니야의 반역과 솔로몬의 즉위 “요압이 나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어찌하여 성읍 중에서 소리가 일어나느냐.”(열왕기상 1:41)이 말씀은 왕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과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비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거짓 왕’의 잔치 속에 참된 왕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전환점입니다. 바로 인간의 역모 위에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는 순간입니다.다윗이 늙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노쇠의 묘사가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한계, 인간의 끝”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보여줍니다. 왕이었던 다윗조차 인간의 연약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의 한계는 곧 “너희가 의지할 자는 다윗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이 코에 있으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2025.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