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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78

디도의 일기(21) - 블라스티니우스의 추격과 바울의 딜레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에베소서 6:12)소식은 편지 한 통에 담겨 왔습니다. 그것도 가이오라는 형제가 목숨을 걸고 전한 긴급한 경고였습니다. 방 안에 앉아 있던 바울, 실라, 누가, 디모데는 그 내용을 듣는 내내 표정이 굳어 갔습니다. 상처투성이 몸으로 빌립보 감옥에서 막 풀려난 바울에게,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매질이었습니다. 블라스티니우스,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그 인물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블라스티니우스의 전략은 놀라울 만큼 정교했습니다. 그는 무작정 칼을 휘두르는 조폭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정밀하게 설계된 해충에 가까웠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 정성껏 가꿔 놓은 밭에.. 2026. 2. 27.
디도의 일기(20) - 길 위의 의사, 그리고 따라오는 그림자 어떤 소식은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가장 약해진 순간에 찾아옵니다. 바울은 지금 말 위에 있었습니다. 채찍을 세 번 맞은 몸으로 빌립보 성문을 나서는 그의 등 뒤로 형제자매들의 찬송 소리가 조용히 따라왔습니다. 누군가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위로인지 배웅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그 경계쯤 어딘가에 있는 노래였습니다.'정말 점잖고 사랑스러운 이들이야. 이런 이들을 알게 된 건 특권이지.' 바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말의 걸음에 몸이 흔들릴 때마다 등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그 생각만큼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직업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의사란 남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을 정면으로 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상처의 깊이를, 고름의 색깔.. 2026. 2. 18.
디도의 일기(19) - 빌립보의 밤에 상처 입은 몸으로 전하는 말씀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16:25,40,20:24)어떤 지도자는 강단에서 내려올 때 박수를 받습니다. 또 어떤 지도자는 감옥에서 나올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채찍에 맞은 등이 아직 아물지도 않은 채, 그는 루디아의 집 거실 벽에 기대어 앉으려다 이내 몸을 앞으로 숙였습니다. 상처가 벽에 닿는 순간 전해지는 통증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첫 마디는 자.. 2026. 2. 18.
디도의 일기(18) - 빌립보를 떠나며, 첫 유럽 교회에 남겨진 과제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떠나니라"(사도행전 16:40)사도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야 하는 밤, 그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의사 누가가 채찍 자국이 남은 그의 등에 약초를 바르는 동안, 바울은 반복해서 같은 걱정을 토로했습니다. "석 달은 너무 짧습니다."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새로운 문화를 익히거나, 심지어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데도 석 달은 겉핥기에 불과합니다. 하물며 완전히 새로운 신앙, 그것도 당시 로마제국 전역에서 생소하고 급진적이었던 기독교 신앙을 뿌리내리게 하기에 석 달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갈라디아 지역에서 바울은 보통 4~5개월씩 머물며 교회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그는 성도들과 함께 식사하고, .. 2026.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