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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교회의 신분과 영적인 실존 - 요한계시록 7장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30.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요한계시록 7:14,17)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구원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란, 재앙과 무관한 진공 상태에 우리를 숨겨 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재앙을 통과하게 하시되 그 재앙의 궁극적인 결론인
‘사망’으로는 가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 한복판에 있습니다. 전쟁과 기근, 질병과 자연재해,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만들어 내는 온갖 파괴 속을 그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재앙 속에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자기 백성에게 인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은 무시무시한 질문 하나로 끝납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세상의 왕들과 권력자들, 강한 자들과 부유한 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산과 바위 틈에 숨으며 절규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진노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요한은 곧바로 일곱 번째 인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7장을 삽입합니다. 이 장은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아무도 서지 못한다. 그러나 내 백성은 선다.” 7장은 교회를 향한 위로의 장입니다. 재앙을 피해 가는 교회가 아니라, 재앙을 통과하면서도 보존되는 교회의 정체성을 보여 줍니다.

요한은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환상을 봅니다. 이 네 바람은 스가랴서가 말하는 온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도구들, 곧 여섯 번째 인에서 등장한 네 말 탄 자들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이 재앙들은 제멋대로 날뛰지 않습니다. 천사들이 붙들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는 해하지 말라.” 재앙보다 먼저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침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인을 친다는 것은 단순한 표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소유 선언이자, “이것은 내가 책임진다”라는 보호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인은 재앙을 제거하는 장치가 아니라, 재앙의 최종 결과인 사망을 무력화시키는 표식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문설주에 발린 어린양의 피는 죽음의 사자를 멈추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집의 장자는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죽음이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 인입니다. 우리는 재앙을 겪지만, 죽음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요한은 인 맞은 자들의 수를 십사만 사천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나온 자들”이라 부릅니다. 이 대목은 수많은 오해를 낳아 왔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실제 혈통적 이스라엘의 숫자를 말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요한은 일부러 불규칙한 지파 목록을 제시합니다. 단 지파는 빠지고, 레위 지파는 포함되며, 에브라임 대신 요셉이 들어갑니다. 이는 명백한 메시지입니다.
“이 이스라엘은 민족적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십사만 사천은 상징입니다. 12(하나님의 백성) × 12(구약과 신약) × 1000(완전성과 충만함). 곧 하나님의 모든 백성, 교회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민수기에서 계수되던 군사들처럼, 이 땅에서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7장 후반부에서 요한은 또 다른 장면을 봅니다.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보좌 앞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입니다.” 환난을 피한 자들이 아닙니다. 환난 속에서 나왔고, 환난을 통과하여 나온 자들입니다. 7장 전반부의 십사만 사천과 7장 후반부의 허다한 무리는 같은 교회입니다. 하나는 전투 중인 교회, 다른 하나는 완성된 교회입니다.

교회의 삶은 고단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고, 우리 안에도 여전히 옛 사람의 습관과 경향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재앙과 환난으로 사용하십니다. 악은 결국 악으로 심판받고, 교회는 그 속에서 연단됩니다. 같은 재앙이 세상에게는 심판이 되지만, 교회에게는 훈육이 됩니다.

하늘의 교회는 더 이상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뜨거운 해도, 눈물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눈물을 씻기십니다. 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약속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현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외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는가?” 환난도, 죽음도,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습니다.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삽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고, 악독과 분노를 버리고, 서로 용서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인침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간을 이식받기 위해 수술대에 오른 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는 찢어질 듯 아팠지만, 회복해 가는 아버지를 보며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아픕니다. 힘듭니다.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이유 없는 고통이 아닙니다. 곧 우리 아버지께서
“내 아들 왔느냐, 내 딸 왔느냐” 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씻기실 날이 옵니다. 그러니 오늘도 자신의 신분과 영적인 실존을 기억하며,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