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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순교자의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는 광야의 여정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3.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6:9~11)

우리는 흔히
‘순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 옛날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던 성도들이나 복음을 전하다가 참혹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마음 한켠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야. 적어도 내 삶과는 거리가 있어.”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제단 아래에 모여 있는 순교자들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서만 죽임을 당한 소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삶’을 살았던 모든 성도들입니다.

말 그대로,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자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합니까?” 계시록 6장에서 순교자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외칩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이 기도는 복수를 요구하는 외침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친 성도들의 탄식,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입니다.

사실 이 질문은 오늘 우리도 수도 없이 던집니다.
“왜 믿고 사는데 이렇게 힘들죠?” “왜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봐야 하나요?” “왜 세상은 늘 악한 사람들이 더 잘 되는 것처럼 보일까요?” 이 질문의 밑바닥에는 늘 같은 고백이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 이 삶이 너무 버겁습니다.”

순교자의 삶이란 ‘죽는 사건’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순교는 단지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옛 사람을 죽여가는 삶입니다. 예를 들면, 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는 직장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조금만 눈 감으면 승진이 보장됩니다. 다들 그렇게 합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선택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결국 그는 그 길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승진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집에 돌아와 씁쓸한 마음으로 식탁에 앉아 이런 생각이 하게 됩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그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피가 흐르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돌에 맞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그는 분명히 하나 죽었습니다. ‘가이사의 나라에서 잘 되고 싶은 욕망’이 죽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은 자아’가 죽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순교자의 삶입니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사이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이 말씀은 단순히 세금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의 것인가? 내 인생은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가?" 가이사의 나라에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시간, 에너지, 양심, 때로는 영혼까지도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이렇게 삽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밤을 새웁니다. 성공을 위해 가족과 신앙을 뒤로 미룹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마음을 깎아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삶은 가이사의 나라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간극에서 우리의 신앙은 늘 찢어집니다.

광야는 실패가 아니라 교육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후 곧바로 가나안으로 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붙들고 있던 가이사의 것들을 하나씩 거두어 가십니다. 안정, 자랑, 확실한 미래, 내가 의지하던 관계, 그때 우리는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품으로 데려가기 위해 다른 것들을 놓게 하시는 중입니다.

순교자의 기도는 결국 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이 죄의 몸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순교자들은 고통이 없어서 천국을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죄와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하나님이 전부가 되는 세계를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외침은 원망이 아니라 소망이었습니다.

당신의 오늘이 바로 그 길 위에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버겁다면, 당신이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그 길을 걷습니다. 어떤 이는 눈에 보이는 핍박을 받고, 어떤 이는 조용한 포기와 내려놓음 속에서 죽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삶을 이렇게 부르십니다.
“순교자의 삶”, 그 길 끝에는 가이사의 나라가 줄 수 없는 참된 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하나님, 이 길이 맞다면, 비록 힘들어도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그 고백이 이미 순교자의 삶인 것입니다.